한국뿐만 아니라 이곳 한인사회에서도 한국군 추가 이라크 파병에 대한 찬성과 반대 논쟁이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제까지만 해도 대체로 보수적인 성향의 인사들이 찬성 편에 서고 진보적인 경향의 인사들이 반대편에 선 가운데, 추가 파병을 거듭 확인한 정부 자체는 진보파여서 어색한 불협화음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김선일 씨의 참혹한 죽음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충격까지 겹쳐 한치의 앞을 보기가 힘이 들게 되었다.
사실 강국들 사이에 끼여 처신이 자유롭지 않았던 한국은 이러한 고민스러운 형편에 처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아마도 가장 대표적인 예는 광해군의 만주 파병인 것 같다.
명 나라와 후금(후의 청 나라)사이에서 광해군은 명 나라 편에 원병을 보내고는 비밀리에 후금 편으로 항복하게 한다는 기묘한 수단을 통해 균형을 유지하였다. 몇 년 후 그를 쫓아내고 고루한 자존심을 고집하다가 정묘, 병자호란으로 두 번씩이나 나라를 짓밟히는 인조의 투박한 외교 솜씨와는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다.
사실 파병을 해야만 한다는 쪽의 논리도 상당하다.
6.25동란 때부터 미국에게 진 피의 부채, 미국의 비위를 거스를 때 받을 손해에 대한 걱정, 이라크 재건에 참여하지 못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입을 경제적 손실, 국가로서 한번 공언한 약속을 바꿀 수 없는 체면, 테러리스트의 압력에 굴복할 수 없다는 것 등은 타당한 이유들이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볼 때, 미국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 우리는 이미 4,800여명의 생명을 월남에서 희생하였다. 미국의 비위를 거스른다 하더라도 미국은 언제나 국익에 따라 낯을 바꾸는 나라이다.
지난 주 터키에서 있었던 나토 회의 때에 그렇게도 거만하던 부시 대통령이 독일과 프랑스에게 비굴하다 싶을 정도로 몸을 낮추어 겨우 이라크 보안군 훈련의 약속을 받아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라크의 재건 작업에 김선일 씨와 같은 위험부담 없이 한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언제 확보될지 아직 기약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일체의 파병 비용은 물론 수많은 알파 이득을 미국으로부터 악착같이 받아내었던 월남 파병 시와 달리 이라크 파병의 모든 비용은 우리가 부담해야만 한다. 파병으로 인한 경제적인 손실이 더 클 수도 있는 형편이다.
아마도 가장 큰 걸림돌은 이미 국제적으로 공언한 약속을 바꾸고 테러리스트의 압력에 굴복한다는 것을 받아드릴 수 없는 우리의 국가적인 자존심일 것 같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것은 이라크 전쟁이 과연 옳은 전쟁인가 옳지 않은 전쟁인가의 문제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아무리 부시 행정부가 고집스러운 궤변을 펴도 이것이 일관되게 정의롭지 못한 전쟁이었다는 것을 의심할 사람은 별로 없다.
과연 한국이 자존심 때문에 정의롭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실리도 없는 남의 전쟁에 전투병을 파병해야 하는가? 이라크 추가 파병은 옳지 않을 뿐 아니라 이미 파병된 서희 제마부대도 귀국시키는 것이 옳다고 본다.
김철회/법정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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