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후 75년이 지난 서기 993년 거란의 장수 소손녕이 대군을 거느리고 고려를 침공했다. 고려 조정에서는 항복을 하자는 주장과 서경 이북의 땅을 바치고 화친하자는 주장이 우세했는데 서희는 이 주장들에 맞서 거란과 싸울 것을 주장했다. 소손녕이 고려의 대신을 자기의 진영으로 부를 때 서희는 자청하여 그를 만나러 갔다.
서희는 소손녕을 만나“고려는 바로 고구려의 후신이므로 나라 이름도 고려라 하였다. 만약 경계를 논한다면 그대 나라의 동경도 모두 우리 땅이다. 우리 고려가 그대 나라와 교역하지 않는 것은 가운데 여진 때문이니 여진을 쫓아내고 우리 도읍지를 돌려주면 어찌 수교하지 않겠는가”하였다.
이 말을 들은 소손녕은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서희를 극진히 대접한 후 군사를 돌렸고 서희의 요구대로 고려가 여진을 쫓아내고 압록강 동쪽을 차지하도록 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강동 6주이다.
고구려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강력했던 고대 왕국이었다. 한반도의 북부에서 만주와 만리장성 이북의 중국, 멀리 몽고의 일부까지 세력을 떨쳤던 고구려는 중국의 통일국가인 수, 당에 맞서 우리 민족의 기상을 드높였던 나라였다. 그런데 중국이 최근 들어 느닷없이 고구려의 역사를 자기네 역사라고 우기고 있다.
고구려의 영토가 대부분 현재의 중국 땅이라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지난 1일 유네스코는 북한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 63기와 중국이 신청한 오녀산성, 국내성 등 고구려 초기의 왕도와 왕릉, 광개토대왕비 등 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정식 등재했다.
중국이 이처럼 고구려 유적을 자기 나라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한 것은 고구려가 자기 나라의 역사임을 내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는 고구려를 한국 역사로 인정해 왔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중국 사학계에서 고구려가 자국 역사에 속한다는 주장이 커져 이제는 정설이 되어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런 중국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이다. 고구려는 동만주와 연해주 일대의 북방민족이 압록강변에 남하하여 세운 나라로 중국 민족과는 전혀 다른 민족이다. 만약 고구려가 중국사에 들어간다면 고구려의 일족이 남하하여 세운 백제도 중국사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고구려는 광대한 영토 속에 만주의 여러 종족을 포용한 나라였지만 그 지배층은 오늘날 한반도의 주인이 된 한민족의 조상이었다.
우리가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사에 빼앗겨서 안 되는 이유는 첫째,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일을 용납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며 둘째, 우리 민족이 원래부터 높은 기상을 가진 민족임을 후세에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국은 역사상 가장 큰 통일국가를 이루어 동양의 맹주라는 긍지를 되찾아가고 있다. 한국은 또다시 정치, 경제적으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나날이 높아가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기세에 눌려서 자칫 잘못하면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까지 송두리째 빼앗길 처지에 놓여있다.
그러나 역사는 역사다. 남북한의 이 세대는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에 팔아먹은 세대가 되지 않도록 각오를 단단히 가져야 할 것이다.
이기영/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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