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의 집… 노루 사슴이 뛰어 놀고… 걱정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고 구름 한 점도 없는 그 곳” ‘언덕 위의 집’이라는 노래이다.
언제나 7월이 오면 가슴에 묻고 살던 이 노래는 내 마음 새하얀 날개를 달아 그 시절, 그 날의 시애틀로 훨훨 날아간다. 시애틀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 노래가 왜 내 마음을 그 곳으로 자꾸만 데리고 가는 걸까?
그건 아마도 내 생애 처음으로 시애틀 땅을 밟던 그 순간의 내 마음의 상태가 흡사 이 시를 지었던 당시의 브루스터 히글리처럼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의 평온을 느꼈기 때문이요, 바로 그 때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시애틀의 계절 중 날씨가 가장 좋은 7월이었고 그 날, 17일은 내 생애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날이었기 때문이요, 나는 그 곳에서 2년간을 하나님 안에서 안식기간을 보냈던 소중한 추억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노래의 가사를 지은 히글리의 생애와 이 시에 곡이 붙여지게 된 과정을 글로 써서 소개했던 로버트 퓰점이 살고 있는 곳이 또한 시애틀이기 때문이리라. 히글리가 살았던 언덕 위의 집을 현지 답사했던 그에 의하면 그 집은 숲 언덕 위에 우뚝 선 통나무집으로 의사였던 히글리가 직접 지은 집이라고 한다.
처복이 없었던 그는 첫 아내를 전염병으로, 둘째는 산후병으로, 셋째는 사고로, 넷째와는 불행했다. 불행을 술로 달래던 그는 술 중독으로 의사로서의 구실을 다하지 못하게 되자 아내와 결별을 선언하고 아이들을 친척집에 맡긴 채 정처 없이 서부로 향했다.
마침내 정착한 곳이 바로 ‘언덕 위의 집’이었다. 실제로는 그 언덕 위의 집 아래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험악하게 뻗어 있었다고 한다. 그 골짜기의 언덕에 집을 짓고 몇 마일씩 가서 화살이나 총알을 빼주는 수술을 해 주고 빈손으로 돌아왔던 그의 삶, 그 초월적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퓰점의 글을 읽으면서 난 웬지 히글리가 가족을 등지고 정처 없이 서부로 향해 그곳까지 오는 동안에 완전히 자신을 비운 상태에서 자신의 인간적 한계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통로를 가질 수 있었으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을 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을 그는 가지게 되었을 것이라고.
자유의 참 맛은 노예가 알고 평화의 참 맛은 생지옥에서 죽지 못해 살던 자가 안다던가. 1981년 13년의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몸에 어울리지도 않는 금의를 입고 내키지 않는 환향을 했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곳은 음침한 골짜기였다. 9년간의 그 곳 생활을 접고 다시 미국 행을 결심했을 때 생각나는 곳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시애틀이었다. 그리고 12년이 흘렀다. 어느새 나의 마음에는 다시 조금씩 때가 끼기 시작했고 그런 남루를 꺼내 생명의 강에 자주 빨아 널어야만 했다.
그곳 동포들이 천당에 버금갈 정도로 아름답고 살기 좋다 해서 ‘999당’이라 부른다는 그 시애틀이 자꾸만 그리워지는 7월이다. 내 영혼에 햇빛 비추던 그 날이 오면 난 그동안 가두어 기르고 있던 자라 한 쌍을 자연으로 되돌려 줄 생각이다.
조광렬/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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