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튀기는 내가 즐기는 주전부리 가운데 하나이다. 나이가 든 사람이 먹기에는 좀 체면이 서지 않지만 바삭바삭하며 고소한 데다 저 칼로리라서 체중에 신경을 써야 하는 사람에게는 비길 데 없는 입정거리이다. 한 봉지에 중형 접시 만한 것 일곱 개가 들어 있으나 총 무게가 90그램도 안 되는 뻥튀기는 한인 마켓 어디서나 보통 2달러면 살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도 애용하는지 가끔 재고가 바닥날 때가 있어 구입치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아내는 저녁상을 물리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TV앞에 앉으려면 뻥튀기를 꺼내다가 권하지도 않고 혼자서 열심히 먹고 있는 나를 처음에는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며 몇 마디 거들었으나 지금은 포기했는지 아예 그러려니 하고 있다. 웃기는 것은 작년에 보스턴의 큰딸아이 집에 갔을 때 내가 온다고 미국인 사위가 미리 보아온 식품에 뻥튀기가 끼어 있었다. 멀리 시내까지 가서 사다놓았다는 것이다.
내가 뻥튀기를 좋아하는 정도는 한국에 갔을 때 두 번이나 뻥튀기 기계를 사려고 시장을 헤맨 데서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신문에 해외에 파병되는 한국군의 병참물건에 뻥튀기 기계가 포함되어 있었다. 값싸고 어디서나 쉽게 만들 수 있는 뻥튀기는 대민선무 공작, 특히 어린아이들의 호감을 사는데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군인들에게도 건빵 대신 간식으로 나눠주지나 않을지? 뻥튀기의 원조는 아마 팝콘이 아닐까 한다. 시장이나 동네 골목에서 옥수수를 철제 원통에 넣고 열기가 골고루 닿도록 돌리다가 일정한 압력상태에 이르면 커다란 쇠망에 주둥이를 넣고 힘차게 튀겨내는 팝콘은 그 구수한 냄새와 요란한 소리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족하였다.
뻥튀기라는 이름도 뻥 소리 내며 튀겨낸다고 해서 부쳐진 이름일 것이다. 고물수집상이 도시 근대화에 밀려 사라지면서 대신 상점에는 쌀로 만든 뻥튀기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제 팝콘은 극장에나 가야 먹을 수 있는 추억의 먹거리가 되었다.
뻥튀기는 단순히 스낵의 이름만이 아니라 어떤 사실을 부풀리거나 과장하는 것으로 더 사용되고 있다. 뻥튀기의 금메달 감은 역시 북한의 김정일이다. 그의 뻥튀기는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특히 골프실력은 과히 장군님다워서 게임당 홀인원이 몇 차례 나오고 버디는 기본이라고 한다. 차제에 프로골퍼가 되어 굶주리는 북한 주민을 위해 몸소 외화벌이에 나서는 것도 괜찮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부시 대통령도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뻥튀기 했다가 대선을 앞두고 큰 곤욕을 치르고 있으며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목적 달성을 위해 실력을 뻥튀기 하는 일에 양심을 묶어놓기도 했다. 이렇듯 사람은 자칫 실제보다 뻥튀기 하려는 유혹을 받기 쉬운데 덕담은 봐줄 수 있으나 나쁜 일은 한국사람끼리 만이라도 제발 그만 두었으면 좋겠다.
최근 한인사회에 큰 뉴스가 됐던 두개의 대형 금융사고나 당구장의 전·현 주인간의 목숨 건 알력도 그 원인은 뻥튀기 때문이었다. 고객의 매상이나 소득보고가 주요 업무인 필자는 사업체를 사고 팔 때 생기기 마련인 진실게임에 어느 편에 서야할지 매우 곤혹스런 입장에 빠질 때가 있다.
한국사람은 왜 거짓말이나 속임수에 너그러운가, 어째서 옳고 그름에 눈을 돌리고 있는가, 믿음과 행동이 합일되지 않는 신앙생활을 하는가. 이런 나쁜 사회통념과 병폐가 먹어 치울 수 있는 뻥튀기라면 내가 모두 사들이고 싶다.
조만연/수필가·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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