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의 도로위/아스팔트에선/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달도 추억을 잃었는지/ 혼자 쓸쓸히 웃고있네 /새벽이 오면 이 밤도 추억일 뿐 /새날이 태어나요/다 타버린 날은 끝나고…”
캣츠에서 주인공 그리자벨리가 부른 ‘메모리’의 일부이다. 그리자벨리는 추억 속으로 여행을 떠나며 단 한번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으로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나도 인생의 가을 언덕길을 산책하며 추억의 조각배를 타고 삶을 음미해 본다. 먼길을 돌아온 연륜의 흔적은 볼품없이 비대해진 체구와 변질된 목소리로 세월을 이야기하는 또 다른 나를 찾아 조망해 본다. 밤이 깊도록 아름다운 낙서로 마음 안에 추상화를 그리면 유년의 시간들이 멀리서 다가와 일상을 밀치고 가슴으로 안긴다. 고향의 뒷산과 앞뜰의 샛강에 흐드러진 버들강아지, 갈대들의 속삭임. 산비탈 언덕 위의 들꽃들은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모여 살고 있겠지…
아름다운 오늘의 삶은 내일의 추억을 만들고 먼 훗날 이야기의 꽃으로 장식되겠지.
올 여름 휴가는 온 가족이 하와이 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손녀들 열 식구의 대이동은 시작되었다. 뭉게구름이 융단같이 펼쳐진 파란 하늘을 날아 일상을 벗어났다.
온 가족이 함께 거니는 아침 산책길,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는 앞뜰의 바다, 호수를 선회하는 유람선의 여유로움, 호텔을 왕래하는 궤도 차의 운전기사가 알로하-로 시작하는 위트 있는 안내 방송은 우리를 즐겁게 해준다.
끝없이 펼쳐진 빅 아일랜드의 전경은 화산과 풍상에 마모되어 흙 갈색의 용암조각들이 전설을 잠재우고 높이 솟은 팜트리만이 그날의 증인으로 자리를 지킨다. 꽃보다 어여쁜 내 아이들과 볼을 비비며 반짝이는 모래사장에서 사랑의 행복감에 도취된 이 시간이 오래도록 머무를 순 없을까
바다는 거짓을 모른다. 파도가 몰고 온 숱한 사연들이 바위에 부서지고 육지로부터 흘러온 수천 갈래의 물줄기를 모두 수용할 줄 아는 너그러운 저 바다. 언제나 자연에 순응하며 거센 바람에 몸부림치고 따뜻한 태양 아래 고이 잠드는 바다. 일주일간의 휴가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어릴 때 우리 부부는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추억을 심어주었다.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그대로 재현하는 모습이 기뻤다
비즈니스 관계로 알게된 인도 사람 라미스라는 친구가 있다.
“휴가를 재미있게 지냈느냐”고 묻는 친구에게 환상적이었던 그곳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미국 생활 25년 동안 한번도 휴가를 가본 적이 없단다. 많은 재산과 사업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단 1달러도 벌벌 떨며 못쓰는 그 사람, 라미스는 말하였다.
“아마 나는 오늘이라도 하느님이 부르신다면 주님 며칠만 기다려 주세요 이 재산 아이들에게 골고루 나눠주고 갈게요” 할 것이란다.
우리 두 사람은 크게 웃었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제대로 여행 한번 못 한다면 삶의 목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평생 일만해서 재산을 모아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남겨 주고 가는 것이 다는 아닐 것이다. 진정한 유산은 재물이 아니라 아름다운 추억이 아닐까.
박 안젤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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