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븐에다 찹쌀떡을 해봤는데 맛이 괜찮게 나왔네. 내가 지금 가지고 걸어 갈 테니 미세스 리도 걸어나와서 우리 중간에서 만나요”
전화를 받자마자 슬리퍼를 끌고 한 블록을 걸어가니 선배가 종종걸음으로 뛰다시피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저녁을 짓다말고 나온 차림이 역력한 선배는 따끈따끈한 찹쌀떡 외에도 뒤뜰에서 뜯어 갓 무쳤다는 색깔도 고운 참나물까지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이웃사촌의 끈끈한 사랑도 덤으로 함께.
25년 전, 아는 이라고는 남편의 선후배 몇 분뿐인 시카고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모국과 타주에 계시는 부모님과 형제들은 잘 해야 일 년에 한 번 만날 수 있었다. 자연히 명절을 함께 보내고, 어려울 때 곁에 있어주고, 작은 기쁨도 함께 나눌 수 있던 이들은 친구, 이웃, 그리고 선후배들이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핏줄에 집착하는 우리 민족에게 ‘이웃사촌’이라는 옛말이 있는 걸 보면, 곁에서 일상의 작은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중함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가보다.
그런데 이웃사촌의 영역을 지구촌으로 넓힌 사진작가를 얼마전 접했다. 시카고 다운타운에 새로 지어진 밀레니엄 공원의 개막식이 7월 중순에 있었는데 그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가족앨범’이라는 전시회에서였다.
1995년, 새 천 년을 5년 앞 둔 어느 날, 독일인 사진작가 오머씨는 갑자기 파리에서 잘 운영하고있던 사진관을 닫아건다. 오십의 문턱을 막 넘어선 그가 내세운 이유라는 것이 그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었다 -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서- 라고 했다는 것이다.
보통사람의 보통 머리로는 ‘미쳤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그의 ‘미친 짓’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카메라, 세계지도, 세계 곳곳의 가이드북을 지프에 싣고 떠났다. 4년 동안 16만 마일을 달려 130여 나라를 방문하며 1200여 가족들의 사진을 찍었다. 14살에 자신의 첫 카메라를 소유하면서 사진에 빠진 그는 특히 인물사진 찍기를 좋아해 오로지 그 길을 걸어왔는데, 결국 어느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는 지구촌 가족 앨범을 만들어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 미치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한다 ― 는 말대로 그의 광기와 열정이 사진예술사에 큰 획 하나를 그었다.
‘가족 앨범’이라는 제목으로 2000년부터 세계 곳곳에서 전시되고 있는, 거의 실물크기의 이 지구촌의 희망 가족 앨범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마치 만화경을 보고 있는 것 같다. 7살쯤 되 보이는 손자를 손수 키우며 살고 있다는 러시아의 노부부는 흙먼지 풀풀 나는 길모퉁이에서 수박 한 덩어리를 앞에 놓고 손자와 셋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외국에 나와 살고있는 우리 이민자치고 자신이 외국의 낯 선 도시에 뿌리를 내리고 살게 될 것을 알았던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물며 앞으로 우리의 아이들,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지구촌 어디에서 어떤 이웃과 어울려 살게 될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서 덤으로 주고받는 이웃사촌의 사랑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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