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짧은 일정으로 한국에 다녀왔다. 한국은 또 달라져 있었다. 이번에 본 한국은 최근 몇 년 동안 보아온 한국과 너무 달라져 있어서 “여기 한국 맞아? 서울 맞아?” 하는 의문까지 들 정도였다.
우선 분위기가 많이 침체되어 있었다. 경제가 안 좋다는 얘기는 벌써부터 들어 왔지만 막상 가보니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여름 성수기인데도 예전 같으면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복잡하던 인천공항이 훨씬 덜 북적거렸고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기 전이었는데도 서울거리는 한산해 보였다. 빈 택시가 많이 눈에 띄는가 하면 백화점이나 시장도 예전 같지 않았다. 모두가 경제 때문이란다.
2년 전 월드컵 열기가 온 나라를 뒤덮었을 때의 원기와 활력은 다 어디로 갔는지 궁금했다. 마치 온 세상이 다 자신들의 것인 것처럼 태극기와 촛불과 온몸으로 ‘대-한민국’을 외치던 붉은 악마들은 붉은 개미로 변했는지 자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젊은 세대, 새로운 세대를 지지기반으로 하는 젊고 새로운 ‘참여정부’가 이끌고 있는 한국이라는데 왜 이런가 하는 의문도 생겼다.
2년 전에도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월드컵은 한국에게 어떤 실속도 가져다주지 못했고 오히려 헛된 자고(自高)의식만 부풀렸다. 못난 송아지의 엉덩이에 자라는 뿔처럼 그릇된 민족주의만 키워 놓았다. 무슨 일에든 촛불을 들고 나와 외치는 대중주의는 친북, 용공, 반미를 정의와 선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급기야 간첩을 민주화투쟁 인사라고 치부하기에 이르렀다.
한미관계가 사상 최악에 빠진 가운데 미군 감축과 철수가 현실화하고 있고 이제 한국은 미국 대외정책의 중심에서 벗어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가 하면 ‘욘사마’를 외치며 한국에 홀딱 빠진 것 같이 보이는 일본으로부터는 동해와 독도문제로 시달리고 있고, 또 한류의 급상승으로 한국을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듯한 중국에게는 고구려 역사를 빼앗길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래저래 지금 한국은 경제난국을 포함해서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소득이 오르지 않자 서민들의 소비가 주춤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돈 있는 사람들도 정국과 사회 불안에 국내투자를 주저하고 오히려 있는 돈을 해외로 빼돌리기에 바쁘다는 얘기다. 교육문제도 그렇고 어느 구석을 봐도 한국 사회에 미래는 없다는 불안감이 꽉 차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사회 곳곳에서 불평과 불만이 불거지고 이러한 불평, 불만은 예의 대중주의적인 저항을 보이고 있다.
툭하면 머리 끈을 두르고 주먹을 치켜드는 민노총을 비롯한 한국의 노조는 이미 세계에서 보기 드문 강성노조가 되었다. 이에 질세라 교사들도 벌써부터 전교조라는 강성노조를 만들어 목소리를 내고 학부모들도 질세라 학사모(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들의 모임)를 만들어 힘을 과시한다.
지금 한국사회는 이래도 불만이고 저래도 불만이다. 비판과 비난, 그리고 촛불과 단체행동을 능사로 아는 세태가 되었다. 일이 잘 안 되면 그때마다 그게 누구 탓이라고 손가락질하기 바쁘다.
그래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문득 떠오른 것이 40여 년 전 케네디가 한 연설이다. 정부가 내게 뭘 해 줄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내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는 그 말을 지금 한국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다.
장석정/일리노이주립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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