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상차를 타고 로키산맥 준령 아스바스카 빙하 끝자락 표면에 발을 딛고 섰다. 그 순간 장엄한 자연의 신비 속에 압도되어 나를 잃어버리고 무아의 경지에서 신비한 감격의 한 순간을 맛볼 수 있었다.
영롱한 색깔의 얼음층 위에 하얀 눈으로 덮인 설경 산봉우리와 빙원, 빙곡 그리고 스노 돔이라는 지상의 백설지붕으로부터 밀려 내려온 빙하 그 끝 지점에 나는 서 있었다. 얼음과 얼음이 균열된 틈새로 방울방울 녹아 떨어지는 물방울이 모여서 계곡으로 흘러간다. 그 쓰리고 아린 찬물에 손을 담그니 여기가 바로 삶과 죽음의 분계선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저 발아래 펼쳐진 푸른 숲은 살아 숨쉬는 생명과 삶의 상징이요 이 빙하 끝자락 위에는 눈과 얼음 바람, 그리고 햇볕 이외에는 어떠한 생명도 거부하는 죽음의 세계다. 생과 사가 극명히 구별되는 이곳은 결코 인위적으로 만든 사선이 아니다.
그런데 왜 이곳 사지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삶에 대한 신비를 느끼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은 아마도 대자연의 웅장하고 신비함이 한낮 작은 인간의 삶의 질곡을 압도하고 생과 사를 초월하는 신비 속으로 몰입시키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눈과 얼음 빙원과 빙하, 그것들은 생명을 포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들이 녹아 물이 되는 그 순간 물은 생명을 잉태하고 그 근원이 되는 것이다. 저 하얀 설경의 스노 돔을 정점으로 하는 장엄한 적설과 빙원, 그것들은 잠재적으로는 무한한 생명을 저장하고 있는 보고다.
눈은 저수지가 필요 없는 물이다. 눈은 내려 쌓였다가 시간이 흘러가면 얼음이 되고 그 얼음은 또 쌓이는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계곡으로 밀려 시내 물이 되고 강물이 되며 푸른 벌판을 흘러간다. 이 눈과 얼음 덩어리들도 한때는 하늘을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이었다. 그것이 다시 물이 되어 흘러가 증발하면 하늘로 다시 올라가 구름이 되지 않겠는가.
자연은 있는 그대로가 좋다. 관광이라는 미명 아래 수많은 사람이 밟고 만지고 설상차의 거대한 바퀴가 문지르고 매연을 내뿜고 해 차츰 해빙지점이 위로 올라간다고 한다. 자연을 사랑한다하고 인간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자연은 공해와 오염에 시달려야 하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우리가 뿌린 공해의 결과가 심히 걱정스럽다.
제봉주/ 아케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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