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연휴 독자에 띄우는 글
불황·실업·政爭 등 삶이 힘들어도… 우린 헐뜯지 말고 함께 이겨내야
올해에도 고향에 가시겠죠?
아무리 살기가 팍팍하고 세상 돌아가는 모양이 어지러워도 고향은 고향이 아닙니까. 건설교통부는 올 추석 연휴에 연인원 7,872만명이 이동할 거라고 발표했더군요. 어떻게 1만명 단위까지 그런 정확한 예측이 가능한지는 몰라도 아무튼 작년보다 7.5%가 늘어났답니다.
올 추석은 유독 연휴가 길다 보니 못 가겠다는 핑곗거리도 없고, 선물 때문에 고민이 많으실 겁니다. 공직사회를 중심으로 선물 안 주고 안 받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지만, 그거야 돈 많고 권세있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 아닌가요.
지난 1년 동안 여러가지로 더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작년 추석만 해도 오는 길에 태풍 매미로 모두가 고통을 겪었지만, 그래도 차비가 없어 시골에 못 가겠다는 말은 들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친지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는 기억이 나십니까? 집권세력의 신당 창당 움직임과 이라크 파병 문제가 가장 뜨거운 이슈였죠. 그후 엄청난 갈등과 대립을 겪으며 열린우리당이 태어났고, 자이툰 부대 장병들은 이제 사막에서 보름달을 보게 됐군요.
올해는 차례상 앞에서 무슨 말들을 나누게 될까요? 화제는 작년보다 훨씬 더 풍성하고 뜨거울 겁니다.
경기침체, 국가보안법 개폐, 과거사 규명, 행정수도 이전, 고교등급제, 발음하기도 어려운 리디노미네이션인가 뭔가 하는 화폐단위 변경 문제…. 하지만 한바탕 떠들어봤자 결국 또 세대와 계층과 지역 간의 갈등만 확인하고 우리 모두 쓸쓸해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사촌형이 실직하고, 고모부가 신용불량자가 되고, 당숙의 사업이 망하고, 뭐 그런 소식을 들을지도 모르죠. 고향마을 앞의 논에 벼는 패였겠지만 누군가가 뒤엎어 갈아버린 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너무 우울한 이야기들만 늘어 놓았나요? 노무현 대통령은 일부 세력이 위기를 과장하고 있다고 주장하긴 하지만, 아직까진 우리 정치 사회 경제가 그렇게 총체적인 위기라는 명확한 징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참 고생 많았습니다. 이번 한가위 연휴는 우리 모두 숨을 좀 고르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에겐 가족과 고향이라는 변함없는 따뜻한 울타리가 있지 않나요?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도 있다는 것, 우리에겐 훈훈한 인심이 남아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어려운 가운데 더 빛이 나는 것들도 있습니다. 의견은 달라도 서로 비방하진 맙시다.
이제 소박하나마 선물보따리를 쌀 시간입니다. 한숨으로 송편을 빚지 말고 내년에는 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빚기를 바랍니다.
가부장적 명절문화에서 벗어나 며느리증후군도 덜어줍시다. 봇짐 메고 고향을 떠날 때의 초심을 한번 기억해 보십시오.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이, 동구녘의 넉넉하고 든든한 느티나무가 눈앞에 삼삼하지 않습니까. 이 긴 연휴에서 우리 모두 희망을 길어 올립시다.
글 한기봉 부국장 kibong@hk.co.kr
그림 신동준 기자 dj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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