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구 목사(호놀룰루한인장로교회)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후의 일이다. 당시 대학생들은 자긍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했던 듯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어려운 예비고사 및 본고사 시험 등의 여러 관문들을 통과하고 들어선 대학이니 당연할 수밖에. 특별히 당시 서울에 소재한 대학의 문턱에라도 한번 들어서려면, 물론 조금씩은 차이가 있었겠지만, 그래도 공부를 꽤나 잘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던 시절
이었다.
제주도에서 유학 온 부잣집 출신의 친구와 함께 그날도 나는 상큼한 풋내기 대학생 냄새를 풍겨가면서 숙명여대 근처의 음악다방이란 곳에 난생 처음 입장하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예쁘장한 여대생 둘이 선뜻 다가와서, 당시 한참 유행하던 ‘1일 찻집 티켓’을 좀 구입해 달라고 애걸 복걸이었다.
당황하던 내 모습과는 달리 친구는 의젓하게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티켓을 구입하면서 이렇게 말을 부쳤다. 그런데 어느 학교에 다니세요? 큼지막한 십자가가 유난히도 눈에 띄는 학교 배지를 가슴에 달고 있던 이 여학생들에겐 무척이나 돌발적인 질문이었던 듯 싶다. 그들은 내심 당황하
면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한신대학교 모르세요? 한국신학대학? 그러나 이 가짜 한신대 학생들 앞에서 정작 더 당황한 사람들은 오히려 그들의 얼굴 앞에 있던 진짜 한신대 학생들이었다.
당시 한신대학교(한국신학대학)는 전교생이라고 해보았자, 대학원 학생을 포함하여 기껏해야 200명이 조금 넘은 숫자에 불과하였다. 그래서 이 작은 공동체의 얼굴들을 다 파악하는 데에는 솔직한 말로 한 달도 채 걸리지를 않았다. 그런데 그럼에도 그들 가운데 일원임을 빙자한 가짜가 나타나다니 이건 한참을 잘못 짚었던 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당시 모
무인가 신학교의 학생들이었다.
어느덧 하와이에서의 목회 생활도 이제 벌써 5년째다. 유수와 같이 빠른 세월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되는 듯 하다. 11년 남가주에서의 오랜 추억을 뒤로하고 하와이에 처음 도착하니 모든 것이 마냥 새롭게만 여겨지는 때가 있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모든 것에 또 다시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두려움과 불편함도 있었지만, 그래도
감사한 것은 마음 포근한 서너 명의 대학 동문 선배들로부터 환영을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함께 하는 자리에서부터 무척이나 충격적인 소리를 듣게 되었다. 가짜 ‘한신대 졸업생’을 사칭하는 목회자가 하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는 선배님과 조용히 불러서 타일러 보자는 선배 어르신의 논의가 오가고 있었다. 처음부터 예기치 않은 상황을 접하게 되니 차라리 혼란스럽기 시작했다. 그리고 뇌리 속에는
풋내기 대학 시절의 아련한 ‘티켓 사건’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기 시작했다.
사탄이 이 세대에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직에 대한 무감각’이 아닌가 한다. 이제는 정직을 신념으로 지키던 사람들조차도 시대에 타협하면서 정직이나 진실을 오히려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나 장식품 정도로 여기는 듯 하다. 또 정직을 부르짖는 사람을 향해서는 오히려 손가락질하면서 모난 사람 또는 고리타분한 사람 정도로 치부해 버리는 것 같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윤리 규정들이 무너져 내려가고 있는 중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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