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을 다녀온 지인들이 하나 같이 화제에 올리는 것 중 하나가 청계천 이야기다. 부정적인면을 거론하는 이도 있으나, 대체로 긍정적인 평이다.
‘나라님’을 포함 무수한 정치인들이 스트레스 제조기 역할을 하는 현실에서 청계천에 낸 물길은 가슴 답답한 한국인들에게 냉수 한 잔이었으리라. 공사과정에서 생업을 잃은 사람들의 이슈와 개발이냐 복원이냐 논란 등이 있지만 내·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걸 보면 역시 잘한 일이다. 덕분에 그 일을 앞장서 추진한 이명박 서울시장은 주가가 훌쩍 뛰어 차기 대선 후보군 중 두각을 나타내는 효과까지 거뒀다.
아직 가보지는 못했으나 한국인들이 왜 청계천에 환호하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지난 2001년에 이민 100주년을 앞두고 코리안 아메리칸의 뿌리 찾기 취재를 다녀온 일이 있다. 애리조나와 텍사스의 5개 도시를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출발 다음날 9.11이 터져 천신만고 끝에 취재를 마친 일도 기억에 새롭지만, 가장 뇌리에 남은 것은 텍사스 남쪽 샌안토니오의 심상(image). 한밤중에 도착, 다운타운을 일별하고 자고 일어나 아침에 겨우 몇 시간 돌아본 도시가 지금도 강렬하게 각인돼 있다.
샌안토니오가 아름다운 건 다운타운에 물길이 있어서였다. 40여년전 도시를 관통하는 샌안토니아강 지류를 인공으로 끌어들여 만든 물길에 배를 띄우고 산책로 주변에 분위기 있는 카페, 갤러리, 극장, 호텔 등을 지은 그 곳에는 낭만이 흐르고 있었다. 시간이 부족해 배도 못 타보고 떠나왔지만 언젠가 꼭 다시 오리라고 다짐했다.
막 수로가 열린 청계천이 주는 의미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출구 없는 답답한 현실로 고단해 하는 국민들에게 마음 붙일 곳 하나 마련해 준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감성 마케팅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샌안토니오에 비교할 정도는 못 되지만 지친 사람들에게 작은 행복감을 선사한 것이다.
최근 들어 타운업계에도 감성 마케팅을 하는 곳이 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이메일 한 줄 적어 클릭하면 되는 디지털 시대에 손으로 꾹꾹 눌러 쓴 감사 카드를 보내는 화장품점, 스트릿 파킹 미터기에 넣을 동전을 주는 세탁소, 발레 파킹비를 대신 내주는 업소 등이 생겨났다. 이밖에 건의함을 마련한 커피샵과 고객만족도 조사카드를 식탁에 비치한 식당도 있다. 한 신설은행은 얼마전 가장 비즈니스적인 객장 한켠을 갤러리로 만들어 고객들의 마음을 푸근케 하기도 했다.
그까짓 카드 한 장, 동전 하나, 뭐 대단하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상품과 서비스의 품질이 비슷한 두 업소 중 어떤 곳을 찾겠느냐에 대답은 자명하다. 소비자들은 하이텍과 편의만능주의가 지배하는 팍팍한 세상일수록 사람 냄새를 그리워한다.
지난 여름의 일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감성 마케팅으로 유명한 스타벅스의 본사가 있는 시애틀을 방문했을 때였다. 주일예배를 위해 다운타운 인근의 교회를 찾았는데, ‘조반 예배’(1부 예배)에 앞서 아침을 공짜로 얻어먹었다. 그때 주방에서 샌드위치를 서브하는 한 여성을 볼 수 있었다. 35개국에 5,000여개 매장이 있고 9만여명인 전 직원(회사측은 파트너라고 부른다)에게 스탁옵션을 주는 다국적 기업 스타벅스의 서열 7위인 도로시 김씨였다. 그가 연소득이 밀리언달러를 넘은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점보다, 그런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을 겸허하게 섬길 수 있다는 사실이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고객이 행복하기 전까지는 나도 행복할 수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상품 및 서비스의 질에 충실한 동시에 비즈니스에 ‘휴먼 터치’를 도입하는 한인 업주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고객의 마음을 열면 지갑은 자연히 열린다. 감동은 많은 선전보다 더 설득력 있는 웅변이기 때문이다.
김장섭 경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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