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표현으로 ‘’Easy Come, Easy Go’’라는 것이 있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없어진다는 것이다. 누구인들 쉽게 성취하고 쉽게 살기를 원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자연의 법칙과 역사의 흐름이 그렇게 쉽지 않은 것이 인간만사이다.
40년 의료 경력의 필자는 서울대 연구소에서 4년간, 미국 연구소에서 4년간 연구원 생활을 해 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 스캔들을 특별한 관심으로 지켜보았다.
미국에서는 연방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아서 환자에게 새 약을 쓰기까지는 10년이 걸리고 수천만 달러의 연구비용이 드는 것이 통상이다. 그리고 3단계의 테스트를 거쳐야 마지막 허가가 나오는데 동물실험 단계, 안전도 검사, 임상성능 연구를 통해 효율성과 부작용문제를 확인해야된다.
1년 전에 황우석 교수가 척추마비 장애 아이와 부모에게 줄기세포로 병을 고쳐주겠다는 약속을 하는 보도와 사진을 보면서 그때 이미 문제가 싹 트고 있음을 감지했다. 수의대 교수의 기초연구는 훌륭한 일이지만 환자의 병을 금방 고칠 수 있는 것처럼 홍보를 하는 것은 이미 과학자의 범주를 벗어나 연예인이나 정치인의 활동과 약속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연구실에서 일할 때 가장 큰 스트레스는 실험결과 보고가 제때에 나가야 연구비를 계속 지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어느 실험실 연구자에게나 피할 수 없는 고통임을 이해해 주어야 한다.
축구 선수들을 열광적으로 응원하던 한국인들의 열정과 아우성이 줄기세포로 만병통치 하려는 초 국민적 기대와 성원으로 바뀌었으니 가히 광기에 가까운 분위기 속에서 짧은 시일 안에 세계적인 결과를 내 놓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탐구하는 자연 과학자들에게는 절대로 범해서는 안 되는 원리원칙이 있다. 거짓을 사실로 만들 수는 없다. 아무리 시간에 쫓기어도, 아무리 경쟁이 심해도 거짓보고는 할 수 없다. 진리여부는 반드시 다른 과학자들에 의하여 똑같은 방법으로 똑같은 결과를 가져올 때 증명이 된다.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한마디씩 논평을 하는 속에서 필자는 바다건너 멀리서 느껴오던 한국민족의 문화적 병폐가 이번의 황교수 문제를 빚어낸 것으로 본다. 미국에서는 ‘liar(거짓말쟁이)’라는 표현이 가장 치명적인 낙인으로 여겨지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밥먹듯이 쉽게 여겨지는 것이 거짓말이다. 학교 다닐 때 흔히 하는 컨닝에서 시작되어 거짓이 모든 사회생활 속에 만연되어 있으니 거짓으로 연구보고 작성하는데도 수치감이 그리 크지 않을 걸로 짐작되어진다.
무슨 수를 써서도 이겨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선한 방법(means)이 결과(ends)보다 중요하다는 기본 정신이 외면 당하는 한국적 문화와 생활태도가 결국 줄기세포 연구의 부정을 초래한 죄의 씨가 된 것이다. 미국에서 어릴 때부터 주입하는 스포츠맨십 혹은 보이스카우트 정신이 바로 선한 방법에 중점을 두는 교육이지 승리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다. 인간 생활 속에서는 항상 실패가 있고 잘못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실패를 통해서 개선하는 지혜가 있어야겠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한다는 철학,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벌기만 하면 된다는 사회적 병폐가 뿌리깊은 한국사회의 윤리개선과 자각운동이 일어나야 하겠다. 한국문화의 근본적인 개혁이 있어야겠다.
수단과 방법이 선해야 되고 진실에 충실해야겠다. 도덕적 자각이 앞서는 민족적 풍토를 이룩해야겠다. 이번 일로 특히 격려되는 바는 한국의 젊은 과학자들의 양식이 살아있어서 한국인의 손으로 거짓을 밝혀 낼 수 있었다는 긍지이다. 또 한국 연구기술의 세계 톱 수준에 오를 수 있었다는 점은 무시 할 수 없는 현실이다.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지는 말아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도덕적 자각 속에서 계속 연구 업적을 낼 수 있도록 기대와 성원을 아끼지 말자.
권영조
암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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