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세대 4050 보고서’가 이번 주 우리 신문에 연재되고 있다. 부족한 대로 이민사회와 가정의 중추인 사오십대 중년들의 삶과 그들의 고민을 한번 들여다보자는 생각에서다. 움치지도, 뛰지도 못하는 낀 세대 4050의 남모르는 비애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문학작품이 하나 있다. 아서 밀러의‘어느 세일즈맨의 죽음’이 곧 그것이다.
배경은 1940년대 뉴욕. 주인공 윌리 로우먼은 평생 세일즈맨으로 가족과 직장을 위해 일했다.
성실은 곧 성공으로 연결되리라는 고전적 가치관을 믿었다. 하지만 나이 들고, 쓸모가 없어진 그는 직장에서 해고된다.
‘오렌지 알맹이만 먹고 껍질은 버린단 말인가? 인간은 과일이 아니지 않은가’라는 항변은 공허하다. 그의 아들들은 직장도 얻지 못하고 있었다. 해고 세일즈맨이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은 자신이 죽 어 보험금을 남기는 것. 그는 자살했고, 목숨 값을 남겼다.
독자들은 로우먼에게서 우선 자신들의 아버지를 읽을지 모른다. 그러다가 로우먼이 바로 그 자신일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된다.
세일즈맨 로우먼이 세일한 것은 그의 삶이었다. 누구도 자신의 인생을 팔며 사는 데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자각에 이르게 되면 이 작품은 시공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획득한다.
우리 신문의 ‘4050 시리즈’는 사실 이 희곡 한편 속에 뭉뚱거려질 수도 있는 내용들이다. 지난 1949년 33세 청년이 6주만에 썼다는 이 문학작품은 60년 가까운 세월을 흐른 지금 LA 코리아타운은 물론 서울과 베이징에서도 정곡을 찌르는 이야기가 되어 있다.
새삼 느껴지는 것은 문학의 힘이다.‘어느 세일즈맨의 죽음’뿐 아니라 세월의 두터운 지층을 뚫고 고전이란 이름으로 살아남은 명작에는 어느 것이나 위대한 문학정신이 살아 있다. 인간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형성된 문학세계와 그 작품 속의 어떤 진술들은 우리의 폐부를 찌른다.
작년엔가 나온 은희경의 ‘비밀과 거짓말’이라는 소설에는 이같은 말이 나온다.‘진실이란 대개 추악한 것이다. 비밀이나 거짓말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최후 수단이다’
모든 인간은 상상 이상으로 추악한 존재란 성찰을 바탕으로 나온 이같은 진술과, 비밀과 거짓말에 인간성의 존엄을 지키는 역할을 부여한 것은 문학이 아니면 해내기 힘든 작업이다. 예컨대 이런 시귀절은 또 어떤가.
‘인간이란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매일 아침 새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 등이/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아프가니스탄 출신 시인 잘랄루딘 루미의 작품이라는 이 시는 1200년대에 이미 인간에 대한 이같은 각성이 이뤄져 있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샌드위치 세대 4050 시리즈’를 하면서 새삼 문학을 생각하게 된다. 내 나이가 바로 그 나이여서 인지 모른다. 주위에 문학은 많지만 위대한 문학정신은 언제나 그립다.
안상호 부국장·특집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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