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시카고 지역에서 발생한 ‘40대 남성의 10대 의붓딸 살해’ 기사가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14세 아들 하나 딸린 40대 남성이 한국서 데려온 재혼 아내의 15세 딸에게 식칼을 휘두른 기막힌 얘기였다. 행간을 보니 처음에는 상처받은 두 가족이 섞여 잘 살아보겠다고 노력했지만 결국 내식구, 네식구로 편이 갈린 그림이 그려졌다.
이복 자녀들이 사이에 끼어 부부간 오해도 더욱 증폭되고 티격태격 말다툼이 수위가 점차 높아지면서 급기야 폭행과 살인까지 부른 것이다.
먼 곳의 사건이지만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이혼도 재혼도 많은 주변이라선지 그런 시한폭탄 케이스가 한둘이 아니어서다. 겉으로 멀쩡하지만 속으로는 곪고 있는 모습이 평범한 눈에도 여기저기서 잡혀서다.
특히 재혼일 경우 전 결혼으로 인한 자녀들이 각각 딸려 서로의 각오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그 자녀들이 청소년기를 무사히 지나 부모 입장을 전폭 이해하던지 아니면 독립할 때까지 도무지 안심할 수가 없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의도와 또 실제 행동과는 전혀 상관없이 장화홍련전이나 콩쥐팥쥐, 신데렐라에나 나오는 무능한 계부, 악랄한 계모가 되기도 한다.
입양한 한인 딸과 결혼한 배우겸 감독인 우디 알렌 때문에 선입견과 색안경속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남편의 아이, 아내의 아이가 가엾고 잘해주고 싶은데 정이 안가는 죄책감에 고민하는 재혼부부도 꽤 많이 봤다.
새로운 가정을 제대로 꾸미며 행복하게 살려는 이들의 피를 말리는 자녀들은 또 없겠는가? 새엄마를 가정부 취급하며 새 아빠를 학대하는 자녀들도 없지 않다. 믿어지지 않지만 둘 사이를 일부러 이간하거나 방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자녀들 때문에 재혼 성사도 어렵고 어렵사리 했다 해도 결국 자녀문제가 재혼을 다시 파경으로 이끌게 된다”고 한다. 한국의 통계지만 재혼은 60%이상 다시 이혼으로 가고 삼혼은 70%가 깨진다. 재혼이 다시 깨지는 이유의 60%정도는 자녀문제라고 한다.
상담자들도 양쪽 자녀들이 섞이면 아무리 공평하려 해도 자꾸 동색끼리 나뉘고 ‘싸움의 불씨’는 전체로 번진다고 난색이다. 게다가 미주한인이 재혼 배우자를 한국에서 수입하는 경우 그는 더욱 심각해진다며 손사래를 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혼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최근 재혼율이 10년 전에 비해 두배로 뛰었다고 한다. 또 30대에는 꿋꿋이 잘살다가도 40대나 50대에 재혼하게 되는 추세라고도 한다. 남성은 이혼후 재혼을 생각하지만 여성은 이혼 준비와 동시에 재혼 준비를 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다.
재혼율 증가세와 발맞춰 초혼만 다루던 결혼중매기관에서도 재혼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재혼 전문 업체도 생겨 당당하게 ‘재혼준비’를 시킨다. ‘재혼이 전 결혼생활보다 안 좋은 결과가 더 많음을 각오하라’는 것이 한결같은 조언이고 따라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한다.
사전 준비를 강조하는 전문가들 조차 각각 딸린 자녀들에 대해서는 묵비권이다.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봐도 재혼 준비에 자녀들은 배제되어 있다. 재혼의 파경이 대부분 자녀 때문이라는데도 대안이 없다.
상처와 자녀들이 있는 상태의 재혼은 그런 만큼 그림자도 짙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새로운 시작을 말릴 수도 없다. 오히려 축복해야 할 일이다. 다만 자녀들 입장을 좀더 염두에 두고 문제가 있다면 용감하게 오픈하면 좋겠다.
이정인 국제부 부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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