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합감리교회(UMC) 세계선교부(GBGM)와 한인연합감리교회(KUMC) 몽골선교후원회(후원회장 신용철 목사)가 지난 7일부터 14일까지 몽골에서 가진 선교 활동을 취재하면서 둘러본 몽골의 이모저모를 소개한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있는 ‘징기스칸 에어포트’는 아주 작다. 아주 낡은 현대와 기아차가 대부분인 택시를 타고 예약된 호텔로 향했다. 도로는 포장되어 있지만 울퉁불퉁해 차가 흔들렸다. 약 20분, 호텔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다. 몽골호텔 수돗물은 마시지 말라고 한다.
몽골에서는 이류급인 호텔방의 베란다 문에 녹이 슬어있다. 그런대로 방은 깨끗했다. 다음날 아침 몽골의 태양 볕이 호텔로 들어왔다. 몽골은 낮이 길다. 오전 5~6시 먼동이 터오기 시작해 밤 9~10시가 되어야 어둠이 온다. 몽골은 화폐가치가 미화 1달러당 1,180투그룩이다. 한국의 원화가 1달러대 1,000원였던 것을 상기하면 쉽게 비교할 수 있다. 몽골은 교사와 경찰의 월급이 미화 72달러 정도 된다. 보통 아파트 한 달 월세가 250달러 정도.
울란바토르 시내에 있는 40여개 한국식당의 음식 값은 상당히 비쌌다. 통김치찌개가 1만2,000투그룩. 청국장이나 부대찌게가 5,000투그룩이다. 몽골 서민들의 수입으로는 한국 음식 먹기가 녹녹치 않다. 한인이 운영하는 식당 중에는 서울식당이 제일 크다. 몽골을 방문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음식을 먹은 식당이다. 한인이 운영하는 무지개식당은 청국장으로 유명하다. 안주인 백정림씨는 한국에서 왔고 식당경영 4년차다. 종업원들은 몽골사람이다. 한국말을 익혀 손님들의 주문받는 것에 아무 지장이 없다. 미주에서 온 손님들이 음식을 먹고 내는 팁 1~2달러는 종업원들에게 아주 큰 수입이다. 그들의 일당이 미화 4달러 정도니까.
몽골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모여 시장을 보는 블랙마켓을 갔다. 일행 중 한명이 지갑은 앞주머니에 넣고 손으로 꼭 잡고 다니라고 했다. 소매치기가 극성이란다. 슬쩍 지나가며 면도칼로 그어 지갑을 빼내는 수법이 감쪽같다고 한다.
울란바토르 중앙통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백화점에 갔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는데 소매치기가 일행의 지갑을 건드렸나 보다. “그만 둬”(Stop it!)라고 일행 중 한 사람이 소리 지르니 소매치기가 얼른 가버렸다.
몽골사람들은 한국 사람을 ‘솔롱고스’라 부른다. 무지개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란 뜻이다. 몽골내 한인 인구는 노 대통령에게 보고된 숫자가 약 3,000명. 그러나 그보다 훨씬 많이 몽골에 살고 있다. 어떤 사람은 8,000명 정도까지도 얘기한다. 몽골에서 한인들은 식당과 자동차부품공장 등을 많이 한다. 울란바토르 시내서는 한국산 차량을 많이 볼 수 있다. 일제도 많다. 미제는 거의 없다.
몽골의 한 한인은 후레정보통신대학교(총장 김영권 박사)처럼 학교를 짓고 몽골 학생들에게 최신 정보를 가르치는 한인 동포들의 긍정적인 면도 많지만 일부 한인들이 노래방과 술집 등을 차려 몽골여자들을 접대부로 부려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는 경우도 많다고 말한다.몽골의 전통음악과 댄스를 보기 위해 일인당 입장료 6달러를 내고 ‘The Moon Stone Ensemble’을 보러 갔다. 한국 관광객이나 방문객을 위해서인지 ‘립스틱 짙게 바르고’가 흘러 나왔다. 약 1시간 정도 이어진 공연에서 몽골의 혼과 기가 흠뻑 녹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음악에서는 바람소리를 따서 만든 곡들이 많아 유목민의 삶을 그대로 나타내주는 것 같았다.
울란바토르를 벗어나 약 4시간 정도 자동차를 타고 초원엘 갔다. 제주도 조랑말 같은 작은 말들과 소떼들 그리고 양떼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초원 중간 중간에 한국의 성황당에 해당되는 돌들을 쌓아놓은 곳이 있다. 그곳엔 여러 가지 모양과 색깔의 천 조각들이 걸려있다. 다음 목적지까지 무사히 갈 수 있게 기원하는 몽골식 성황당이다.
유목민이 사는 천막집 게르에 들어갔다. 전기가 가까이 있는 게르는 전기를 끌어와 텔레비전을 보는 곳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전기도 없고 우물도 없다. 게르는 원형으로 침실이 따로 없고 그 안 벽모서리에 둘러져 있다. 말똥과 소똥을 땔감으로 하는 난로가 있다. 손님이 오면 그냥 보내지 않고 말 젖으로 만든 전통술과 과자를 대접한다.
몽골 사람들에게서는 한 핏줄 같은 동질감을 느꼈다. 몽골반점이 그것을 반영하는 걸까. 우랄알타이어지만 문자는 몽골식 개조 러시아어다. 문법이 한글과 같다. 억양은 한글 말과 비슷해 방송에 나오는 말을 들으며 한국말인줄 착각했다. 그들의 모습은 일본인과 중국인들과는 다른 한
인들의 인상으로 다가왔다. 여자들은 광대뼈가 조금나온 미인들이 많았다. 남자들은 기골이 장대한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몽골 출신 스모선수들이 일본에서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다 한다. 징기스칸의 후예들. 현재는 공산주의를 거쳐 사회주의 국가로 한국의 1970년대를 연상케 하는 개발도상국이지만 그들의 개척정신과 정열은 얼마 가지 않아 몽골을 부유하게 할 수 있을것이란 기대를 해보았다.
몽골은 250만에서 280만으로 추정되는 인구에 남북한 약 8배 크기의 국토면적을 갖고 있다. 지리적으로 북쪽은 러시아의 토바와 브리야트 공화국, 남쪽은 중국의 신강 위그루자치구와 내몽골자치구에 접해있다. 몽골 인구가 국토에 비해 적은 이유 중 하나는 몽골이 공산화되기 전 전체 남성의 약 40%가 독신 라마승이었다는데 있다.
몽골은 고원지대다. 평균고도는 해발 1,580m. 전체 면적의 40%가 산악지대다. 71%가 초원이며 8%가 산림이다. 서쪽은 알타이 산맥, 동남쪽에 국토의 21%에 해당되는 고비사막이 있다. 고비사막의 모래는 밀가루보다 더 보드랍다. 한국으로 불어 닥치는 황사바람은 이 몽골의 고비사막에서부터 시작돼 중국의 황하 모래와 합쳐 한국으로 건너간다.
몽골 전체 인구의 약 4분의1이 살고 있는 수도 울란바토르는 산으로 둘러싸인 요새다. 몽골의 문명이 살아 움직이는 도시다. 몽골은 1921년 수흐바타르의 인민당이 공산혁명에 성공하여 소련 영향을 받는 공산주의국가가 됐다. 1990년 인민혁명당 서기장 바트뭉흐 등 당 간부가 총사퇴하고 일당 독재 포기와 복수정당제에 의한 자유총선이 실시됐다. 인민대회 의회에서 오치르바르를 대통령으로 선출했고 그는 1993년 직선제에서 다시 재선출됐다. 1996년 총선에선 야당인 민주연합이 승리하여 75년간 지속됐던 인민혁명당의 통치가 끝났다. 지금의 몽골은 사회주의 국가로 이곳엔 한국 대사관도 있고 북한 대사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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