탠드를 가득 메운 군중들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승리의 순간이 눈앞에 온 것 같았다. 키커로 나선 선수는 임국찬. 그러나 실축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70년 월드컵 아시아 지역 1차 예선 더블리그 마지막 경기, 그러니까 37년 전인 1969년 10월19일이었다. 상대는 호주. 후반 20분 현재 스코어는 1대1이었다. 상대 진영을 돌파하던 이회택 선수가 수비수의 반칙에 걸려 넘어지자 주심이 페널티킥을 선언한 것이다.
그걸 못 넣은 것이다. 그래서 임국찬씨는 졸지에 ‘역적’이 됐고 결국은 이민을 떠났다.
바르보사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브라질 사람들은 거의 다 알고 있다. 1950년 월드컵. 주최국 브라질은 마침내 대망의 결승에 진출했다. 그 마지막 문턱에서 그러나 주저앉았다. 우루과이에게 패배한 것. 당시 브라질의 수문장이 바르보사다.
패배의 불명예는 몽땅 그가 뒤집어쓴 것이다. 이후 50년간 불명예를 안고 살다가 브라질 국민들에게 용서도 받지 못한 채 쓸쓸히 숨졌다.
희생양을 요구한다. 스스로를 책망한다. 남의 탓으로 돌린다. 흐느껴 운다. 조바심에 안절부절못한다. 안으로만 삭인다. 난리를 친다. 월드컵 축구에서 졌을 때 보이는 반응이다.
브라질 국민은 축구에 모든 걸 걸었다. 때문에 축구와 관련된 그들의 반응은 극에서 극을 달린다. 패배한다. 그러면 모든 걸 잃은 것 같이 전 국민이 실의에 빠져든다. 그리고 스스로를 아무 쓸모 없는 존재로 비하한다는 것이다. 승리를 했을 경우는 물론 이와 정반대이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기는 이탈리아인도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거기에 한 가지가 더 곁들인다. 온 세상이 이탈리아의 패배를 가져오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식의 심한 넋두리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에게 패배했다. 그러자 튀어나온 게 심판 매수론이다. 이 스토리는 이탈리아에서는 그러므로 정설로 굳어 있다고 한다. 2004년 유럽 컵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러자 이번에 나온 건 음모설이다. 그 악마 같은 스웨덴과 덴마크가 짜고 이탈리아를 견제했다는 식.
영국인들은 남의 탓보다는 자국 선수나 코치를 비난하는 스타일이다. 때문에 경기에 지면 어제까지 영웅대접을 받던 선수들에게 온갖 비난이 쏟아지기 일쑤다.
러시아인들은 난동형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일본에 패배했다. 그러자 폭동이 발생했다. 일본인 상가가 파괴되고 아시아계들은 일본인들 닮았다는 이유로만 린치를 당했다.
독일 월드컵이 개막된 지 두 주째 스팟라이트는 온통 승자에게만 쏠린다. 그러나 16강 진출에 실패해 쓸쓸히 돌아가는 팀도 16개다. 이 선수들에게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관심거리다. 이 역시 월드컵 스토리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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