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털이 복슬복슬 많은 개를 좋아한다. 집에서 키우는 개는 검정과 회색털이 뒤섞여 네모진 얼굴을 뒤덮고 있는 슈나우저 테리어종이다. 털이 어찌나 길고 수북한지 눈이 안 보인다. 막대기에 끼워 쓰는 더러워진 걸레를 연상하면 된다. 나는 그 개가 예쁘다. 성격도 온순하고 붙임성이 좋아서 주인이건 손님이건 온몸을 비비며 따른다.
옆집 개는 커다란 몸집에 털이 짧다. 검정 핏불과 도벌만이 섞였는데 작게 찢어진 눈이 아주 사납게 보인다. 몸통이 검정이고 한쪽 눈에만 흰색 점이 있다. 그 개의 이름은 어울리지도 않게 클라라이다. 슈만이 이걸 알면 무덤 속에 누워서도 통탄할 것이다. 나는 속으로는 그 개가 무섭고 싫지만 주인 앞에서는 예쁘다고 말한다. 우리 식구끼리는 그 개를 클라라 대신 한국말로 점백이! 하고 놀린다.
한번은 옆집 주인과 한 차로 동네 마켓에 같이 가게 되었는데 나는 조수석에 앉고 그가 점박이를 뒷좌석에 싣고 운전을 했다. 점박이가 뒤에서 자꾸만 내 팔뚝을 혀로 핥는데 싫어죽겠다. 내가 팔로 슬그머니 미니까 옆집 남자는 내가 좋아서 장난하는 줄 알고 “Isn’t she pretty?” (너무 예쁘지 않니?)라고 묻는다.
또 그 옆집 개는 잘 생긴 진도이다. 클라라가 잠깐 사이에 진도에게 귀를 물리고 온 뒤에 두 집은 철천지원수가 되었다. 진도 주인은 클라라 주인인 미국인 변호사에게 손해 배상을 하였다. 피해자 가족은 나에게 진도가 야생동물이라고 비난한다. 클라라를 문 것은 잘못 했지만 진도가 한국 출신의 뛰어난 종자이기 때문에 나는 슬그머니 진도 편이 되어 있다.
그 뒷집 개는 말티즈이다. 탐스럽게 하얀 털이 소복하다. 장난감 가게에서 파는 조그만 인형 강아지 같다. 머리를 싸악싹 빗겨서 이마 위에 분수처럼 묶어 올리고 분홍 리번을 묶었다. 사람을 졸졸졸 따라다닌다. 낯선 사람이 오면 신경질적으로 짖어댄다. 너무 짖어서 점박이네 주인이 한숨 못 잤다고 불평하는 것을 몇 차례 들었다. 그러더니 하루는 점박이 주인이 불편 신고를 해서 말티즈는 강아지 훈련학교에 강제로 보내졌다. 한달 훈련시킨 비용으로 4,000 달러를 썼다는데 집에 돌아온 말티즈는 또 짖는다.
요즘 날씨가 너무 덥다. 털이 많은 우리 개는 그늘을 찾아다닌다. 옆으로 누워 잘 때 보면 뒤덮인 털 때문에 어느 쪽이 얼굴이고 어느 쪽이 꼬리인지 빨리 분간이 안 간다. 얘야, 너 참 덥겠구나! 이 여름에 100 퍼센트 순모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운 개가 측은해서 나는 이발을 좀 해주리라 마음을 먹는다.
“예약을 하셔야 합니다.” 미용실에서 말한다. 며칠을 기다려 털북숭이 개는 이발을 했다. 짧은 스타일이 올해 유행이래나 뭐래나… 털이 없어진 개는 처음 보는 듯 낯설다. 나에게 달려와 온몸을 비벼댄다. 교회 가려고 입은 검정 양복이 순식간에 개털로 뒤덮였다. 계산서에는 샴푸, 귀 소제, 손톱 다듬기, 향수 뿌린 값 등등 하여 200달러가 적혀있다. 세상에! 나는 어제 머리 깎느라 10달러 썼는데. 개가 우리의 상전이다. 언제부터였던가?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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