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설득해 귀국... 미 국부무 비밀해제 문서
1973년 8월 김대중 전 신민당 국회의원 납치 사건이 발생한지 3개월반 뒤인 12월3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현직에서 밀려나자 고 박정희 대통령 몰래 부인과 함께 출국한 뒤 바하마로 망명을 시도하다 현장에 급파된 중정요원의 설득으로 귀국한 사실이 최근 비밀 해제된 미 국무부 외교문서에서 드러났다.
국무부 기록에 따르면 주한미대사관은 한국 정부가 신직수 중정차장을 이후락 중정부장의 후임으로 임명한 1973년 12월3일 국무부 본부에 긴급 전문을 보내 “이후락 전 중정부장과 부인 정윤희씨가 ‘회의 참석’을 이유로 복수 입국 비자 발급을 신청했다. 본부가 반대하지 않는 한 우리는 4일 오전(서울 시간) 비자를 발급할 예정이다”고 보고했다.
이에 국무부는 5일(미국시간) 주미한국대사관에 “김대중 납치 사건과 관련, 미국에는 현재 이후락 전 부장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으므로 이 전 부장이 곧바로 미국에 오면 한국 정부도 비난받을 소지가 많다. 그러므로 이 전 부장은 유럽이나 다른 곳을 먼저 들렀다 미국에 들어오는 방안을 한국 정부에 제안하라”고 지시했다.
주미한국대사관과 국무부가 당시 주고받은 이같은 전문 내용은 미국이 이 전 부장이 박 대통령 몰래 미국 입국 비자를 신청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실제로 주한미대사관은 12월26일 국무부에 보낸 전문에서 “한상국 국무총리 비서가 정치영사에게 이 전 국장과 부인이 대통령의 허가 없이 한국을 떠났다고 전했다. 한 비서는 이 전 부장이 12월18일 캐세이 퍼시픽 항공편으로 출국했으며 현재 파리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고 밝히고 있다. 전문은 또 “한 비서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이 전 부장에게 당분간 국내에 머무르라고 지시했지만 이 전 부장은 정치적 상황, 자신에 대한 사회적 증오, 부정축재에 대해 조사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출국했다”고 적고 있다.
그후 주한미대사관은 국무부에 보낸 1974년 1월6일자 전보에서 “바하마 낫소주재 미대사관으로부터 이 전 부장이 바하마에 거주하기를 원하고 바하마 정부에 몇몇 합작사업을 제안했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바하마 정부는 이 제안과 관련, 낫소주재 미대사관에 이 전 부장의 경력과 배경을 문의해왔다”고 밝히고 있다.
주한미대사관은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 언론이 1974년 2월28일 이 전 부장이 하루전 한국으로 귀국했다는 소식을 보도하자 곧바로 국무부에 ‘이 전 부장의 귀국 배경’을 보고했다.이 전보는 “박 대통령은 이 전 부장이 바하마 영주를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을 보고받고 ‘분노’했다. 대통령은 특히 그가 국가를 떠나 해외에 체류하는 두 번째(참고. 당시 김형욱은 미국에 있었음) 전직 정보부장이 되는 것을 우려해 귀국을 명령했다”며 “런던 중정지부장 김동건이 바하마로 파견돼 이 전 부장과 접촉, 대통령의 귀국 명령을 전했고 이 전 부장은 자신의 안전에 대해 불안감을 피력했으나 ‘기소되거나 탄압받지 않을 것’이라는 보증을 받고 귀국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신용일 기자> yish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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