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을 벗어난 지 10년도 훨씬 지난 한인 박병근씨는 여전히 전쟁터를 헤매고 있다. 지난 1991년 소년티를 벗지 못한 갓 18세의 나이로 1차 걸프전에 미군 특수부대 병사로 참전해 전쟁영웅 칭호까지 들을 정도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제대했지만 오늘까지도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에 조차 공개되지 않았던 1차 걸프전의 참혹한 기억과 상처를 떨쳐버리지 못한 채 심각한 전쟁 후유증(PTSD·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전쟁의 상처로 고통을 이기지 못하던 박씨는 결국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결국 2001년 기소돼 10년형을 선고받고 추방될 처지에 까지 놓여 한인들의 가슴을 짠하게 했다. 천신만고 끝에 다행히 박씨는 주변의 도움으로 얼마 전 법정에서 전쟁 후유증으로 인한 정신장애를 입증해 추방을 면했고 다음 달 무죄판결을 앞두고 있지만 박씨에게 과연 전쟁이 언제쯤이면 끝날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연방의회는 지난 1월 이민법과 군입대 자격법 조항을 개정해 미군 당국이 국가 이익에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입대 희망자의 체류신분을 따지지 않고 모병할 수 있도록 하는 법조항을 신설하고 이 경우 이들에게 영주권 신청 자격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바 있다. (본보 11월11일자 보도)
이 법 개정 소식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수많은 한인 서류미비 이민자들이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군 입대 가능성을 타진해 미 전국의 모병소들에는 미군 입대 가능성을 타진하는 한인 서류미비 이민자들의 문의가 쇄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개정조항을 적용해 모병할 계획이 없다는 모병 당국의 대답으로 한인 서류미비 이민자들의 실망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한 한인 여성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서류미비 신분이다. 미군에 입대할 방법이 없느냐. 딸만 군대에 입대하면 온 가족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만큼 서류미비 이민자 소위 불체자가 합법 신분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서류미비 이민자들이 일상에서 겪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경찰만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운전면허증조차 받을 수 없다. 제대로 된 직장을 잡을 수 없는 것은 물론 한국에 있는 가족과 생이별해 10년 넘게 얼굴조차 보지 못한 채 이산가족으로 살아가는 서류미비자들도 적지 않다.
이들이 꿈에도 소망했던‘포괄적인 이민개혁법안’은 올 한해 미 전국의 거리를 뜨겁게 달군 염원에도 불구하고 무산되고 말았지만 중간선거의 민주당 승리는 또 다시 이들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놓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2007년 새로 구성되는 새 의회는 수많은 이민자들의 절박한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포괄적인 이민개혁법안’을 제정해 이들에게 합법체류 신분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 ‘전쟁터에 나가서라도 영주권을 받고 싶다’는 서류미비 이민자들의 서글픈 사연과 더 이상 맞닥뜨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김상목> 사회부 차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