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초기의 명재상으로 황희를 든다면 후기의 명재상으로는 김재찬이 꼽힌다. 아버지 김익도 영상을 지냈고 자신도 영상을 지냈다.
이 김재찬이 젊었을 때의 일화다. 하루는 궁에 들어가 수직을 들게 됐다. 이날따라 잠들지 못한 임금은 야심한 시간에 김재찬을 불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마침 몸이 아파 입시를 못하고 있는 김재찬의 아버지 김익의 병 증세를 물었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임금은 내시를 불러 인삼을 가져오게 했다. 아버지의 병구완에 쓰라는 것이었다. 그 자상한 배려에 감격했음은 물론이다.
다음 날 그 경위를 들은 아버지는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아들을 야단쳤다. 너 같은 것이 어떻게 임금을 보필할 수 있는가 하고.
얘기는 이랬다. 한 나라의 정승이 아프면 국왕은 예의를 갖추어 정식으로 병문안을 하고 공개적으로 약을 내리는 법이다. 그런데 사사로이, 그것도 한 밤중에 그 아들을 통해 인삼을 보낸다. 이것부터가 잘못이다.
그런 임금도 임금이지만 임금의 잘못을 아뢰지 않고 사사로운 하사품에 그저 기뻐하고 있다니, 그런 한심한 짓이 어디 있는가 하는 나무람이었다.
며칠 후다. 임금이 아버지의 병세를 김재찬에게 재차 물었다. 감히 속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야단맞은 사실을 그대로 임금에게 전했다.
임금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젊은 김재찬에게 먼저 사과했다. 자신이 정승에 대해 예의를 잃었다고. 그리고는 정중한 예의를 갖추어 정식으로 병문안 사절을 보냈다.
전효숙 헌재소장 파문이 가라앉는 모양이다. 대통령이 임명동의안을 마지못해 철회해서다. 3개월 이상을 끌었다. 남은 것은 상처뿐이다. 헌법재판소의 독립성이 손상됐다. 재판관의 권위가 말이 아니게 됐다.
왜 이렇게까지 됐나. 근본 원인은 ‘무례한 권력’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코드만 맞으면 된다. 탈법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 오만이 무리수를 두게 했고, 결국은 인사권 남용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 대통령도 대통령이지만 그 위헌적 제의를 받아들인 재판관도 재판관이다. 법을 다룬다는 법관이다. 그것도 헌법재판소의. 그런데 최소한의 자긍심도 엿볼 수 없다. 그래서 청와대비서관의 전화 한 통화에 선뜻 사표를 냈다가 망신을 당한 것이다.
뽐내고 오만한 마음은 일종의 취기(醉氣)와 같다. 자기 자신에게 취해 있는 것이다. 그 무례한 권력의 취기어린 인사는 파멸을 자초할 수도 있다.
‘예의를 차릴 줄 아는 겸손한 권력’이란 애당초 볼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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