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임 덕’(lame duck)이란 표현은 직역하면 ‘다리를 저는 오리’라는 뜻인데, 정치용어로는 대통령 같은 정치지도자가 임기말이 다가옴에 따라 실권을 잃은 상황을 의미한다. 하지만 원래 이 말은 사업을 하다가 빚진 돈을 못 갚게 된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즉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져 있는 사람을 가리켜 다리를 절어 제대로 걷지도 날지도 못 하는 오리라고 표현한 것이다. 한편 데드 덕(dead duck)은 글자 그대로 ‘죽은 오리’인데 이 말도 관념적으로는 ‘가망이 없는 사람’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일’‘물 건너 간 일/사람’‘이미 죽은 몸’이라는 뜻으로 자주 쓰인다.
조지 W. 부시대통령을 ‘레임 덕’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 같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부시대통령과 공화당에게 더 이상 기대와 희망을 걸 수 없다고 생각해서 이제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에게 승리를 안겨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당장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상황이 호전되리라고 기대할 수도 없는 것 같다.
지난 중간선거에서 당선된 미네소타 출신의 키스 엘리슨이라는 민주당 하원의원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무슬림 하원의원이 되었다. 그런데 이 엘리슨 의원은 내년초 의사당에서 있을 의원 취임선서에서 성경(바이블) 대신 이슬람 경전인 코란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하겠다고 발표해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라크전쟁과 관련하여 미국의 국제적 위상과 신망이 크게 떨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아울러 경제적으로도 미국은 허덕이고 있는 모습이다. 자동차는 일본에게 계속 압도당해 GM, 포드같은 회사가 도산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들리는가 하면 휴대전화 등 IT산업은 한국에게 밀리고 있고, 그밖에 많은 제조업 분야는 중국, 인도 등에게 압도, 추월당하고 있어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미국은 전체적인 경제규모로도 선두의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우리 한인사회에서도 1달러가 1천몇백원 하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이제 곧 900원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 하니 과연 미국의 경제적 위상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듯 싶다.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자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로서도 극히 불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한국에 있을 걸 괜히 왔나보다 싶은 생각도 들겠지만 사실 떠나온 고국의 현실도 갑갑하고 답답하고 또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부시대통령이 이미 ‘레임 덕’이 되었다면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 같다. 잔여임기가 1년밖에 안되는데다가 한국의 현 정권은 그 지지도가 이미 바닥으로 떨어져 있고 이제 집권당의 분열, 해체가 거론되고 있어 현 정권은 ‘레임 덕’이 아니라‘데드 덕’과 진배없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이제 또 다른 ‘노무현’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나오는가 하면 미국인들은 다시 조지 부시 같은 지도자를 뽑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는 얘기가 들린다.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미국과 한국의 대통령이 지금‘레임 덕’이니‘데드 덕’이니 하는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현재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어차피 정치 지도자들은 왔다 가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훌륭한 대통령도 영구히 집권할 수 없고 아무리 무능력한 지도자라도 때가 되면 물러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 각자도 개인적으로‘레임 덕’이나‘데드 덕’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빚진 돈을 못 갚는 채무 불이행에 빠져서도 안 되겠지만, 한 물 간 사람 또는 이미 죽은 몸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되겠다. 어지러운 정치 상황 속에서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해가 저물고 있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 어지러운 정치만 탓하고 있을 게 아니라 개인적으로‘레임 덕, 데드 덕’이 되지 않도록 해가 가기 전에 각자의 삶 주변을 다시 한번 돌아보자.
<장석정> 일리노이주립대 교수·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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