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선서후 7대 아난(오른쪽) 사무총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반기문 사무총장.
2007년 새해는 유엔에서 반기문 사무총장 시대의 개막과 함께 시작됐다. 지난 달 14일 정식취임한 반기문 사무총장의 임기가 새해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반 총장의 임기는 앞으로 5년, 대과 없이 임기가 끝난다면 한번 더 중임하는 것이 상례이므로 앞으로 10년간 유엔은 반기문 총장 시대가 될 공산이 크다.
유엔 회원국 192개국 가운데 한국인이 사무총장이 되었다는 것은 기적같은 일이다. 기적같은 일이라고 말하는데는 그만한 근거가 있다. 앞으로 유엔 회원국이 늘어나면 5개 상임이사국을 배제하더라도 사무총장이 나올 수 있는 나라가 200개국은 될 것이고, 한명의 사무총장이 5년의 임기만 채워도 모든 나라에서 사무총장을 한번씩 하려면 1000년은 걸려야 한다. 반 총장이 사무총장이 되었으니 이제 한국인이 또 사무총장이 되려면 1000년 후에나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유엔이 그 때까지 존속할 수 있을지 조차 의문시되는 일이 아닐 수 없으니 반기문 사무총장 시대의 개막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기적같은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또 한가지는 한국이라는 특수한 나라에서 유엔사무총장이 나왔다는 것도 기적같은 일이다. 유엔사무총장의 자리에는 유엔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국가적 배경을 가진 사람이 적합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중립국 출신이 선출되었다. 그 후에도 강대국 세력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나라에서 사무총장이 나왔다. 한국은 분단국으로 냉전시대에 미국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맹방이었고 지금도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에 가깝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러시아나 중국 등 다른 강대국 등의 배척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 좌파정부의 출현으로 미국 일변도의 정책 방향이 다변화 방향으로 선회했고 반 총장이 이 좌파정부의 외교수장으로 장기간 근무한 점이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안보리 상임이시국에 공통분모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사실 유엔의 역대 사무총장 중 이번처럼 수월하게 선출된 경우는 없었다. 사무총장을 선출하는데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5대 상임이사국은 언제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나라들이다. 미국이 선호하는 총장 후보는 러시아나 중국이 거부하고 그 반대로 러시아가 선호하면 미국이 반대하기 일쑤였다. 또 영국이 선호한다면 프랑스가 반대하는 등 총장 선출은 난행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점이 있다. 그런데 반 총장의 경우처럼 모든 상임이사국이 만장일치로 찬성표를 던진 것은 반 총장보다 유능하고 경륜있는 외교관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반 총장이 아닌 다른 사람이 사무총장에 나섰다면 될 수 있었겠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그러면 도대체 유엔이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국제연합이다. 과거에는 국가간 협의체가 국가 대 국가, 또는 국가집단 대 국가집단 상태로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근세에 들어와서 보편적인 국가협의체로 나타난 것이 나폴레옹 전쟁 이후의 빈체제이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당시 세계인 유럽은 공동과제에 직면했다.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전쟁으로 허물어진 각국의 왕정체제를 복구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체제는 각국의 이해관계 대립으로 인해 오래 가지 못했고 19세기 후반에는 유럽 각국의 제국주의 경쟁으로 인해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그 뒤 세계 1차대전의 참화를 겪은 후 윌슨 미국대통령의 제창으로 국제평화를 위한 최초의 국제연합체로 탄생한 것이 국제연맹이다. 이 체제는 1차대전 후 평화 유지와 지역 분쟁 해결을 위해 노력했으나 제창국인 미국이 상원의 비준 부결로 불참했고 후에 독일, 일본, 이태리의 탈퇴, 소련의 제명 등으로 약체화를 면치 못했다. 결국 국제평화 유지와 안전보장이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2차대전의 발발로 국제연맹도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국제연맹의 뒤를 이은 유엔은 세계 2차대전의 와중에서 태동하여 종전과 함께 탄생했다. 1943년도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처음 거론되어 이듬해 미국의 덤버트 오크스 제안으로 유엔헌장의 기초를 마련했고 1945년 2월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 영국의 처칠 수상, 소련의 스탈린 수상이 얄타회담에서 안보리 등 최종문제를 타결, 1945년 4월부터 샌프란시스코회의, 6월 회원국 서명을 거쳐 동년 10월 24일 51개국의 회원국으로 역사적 출범을 했다.유엔에는 헌장이 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여러 기구가 있다. 최고 기관으로는 1년에 한번, 또는 긴급한 경우 개최하는 총회가 있다. 그리고 안전보장이사회, 경제사회이사회, 신탁통치이사회, 국제사법재판소와 사무국이 있다. 각 이사회의 일을 돕는 보조기구가 113개 있으며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보건기구(WHO),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유엔식량농업기구(FAO), 국제노동기구(ILO)등 16개의 전문기구가 있다. 유엔은 또 수많은 비정부기구(NGO)의 활동을 돕고 있다.
이 중에서도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제 1의 우선과제로 삼는 유엔에서 안전보장이사회의 권한은 막강하다. 유엔은 창설 당시 세계 2차대전 전승국이 주도했기 때문에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중국 등 5대국을 특별대우하여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만들어 거부권을 부여했다. 말하자면 유엔에서 이 5대국은 대주주인 셈이다. 유엔의 사무총장도 안보리에서 선출하는데 5개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가진 것은 두말 할 여지가 없다.
유엔사무총장은 유엔의 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사무국의 수장이다. 유엔 각 기관의 운영에 관한 사무를 모두 관장하기 때문에 모든 회의에 참석할 수 있고 각 기관의 위임사항을 수행한다. 유엔의 사업을 총회에 보고하며 특히 세계 안보에 관한 중대한 위협사항에 대해서는 안보리에 주의를 촉구하기도 한다.
명목상 유엔에서는 총회가 최고기관이지만 총회는 실체가 분명치 않고 사무총장은 상설적이므로 마치 내각책임제 정부 형태에서 국무총리처럼 사무총장이 실질적으로 유엔을 대표하여 권력을 행사한다. 유엔창설 이후 지금까지 1대 리가(노르웨이), 2대 함마슐드(스웨덴), 3대 우탄트(미얀마), 4대 발트하임(오스트리아), 5대 케야르(페루), 6대 갈리(이집트), 7대 아난(가나) 총장이 거쳐갔고 반 총장이 8대 총장이 되었다.그러나 유엔도 나이가 먹어가면서 동맥경화증처럼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50년 중반부터는 2차대전 후 식민지에서 독립한 아시아, 아프리카의 신생 공화국들이 회원국으로 대거 가입하면서 이른바 비동맹국들이 수적으로 우세를 점하게 되었다. 따라서 강대국, 특히 유엔에 결정적 발언권을 행사했던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
후진 신생국의 유입으로 유엔이 인류사상 최초의 세계 기구로 발전하자 유엔의 임무는 기아와 질병 등 인류의 행복을 위한 모든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이에 따라 유엔의 기구는 계속 늘어났고 인력과 예산이 급격히 팽창했다. 그러나 유엔 안에서 강대국의 입지가 줄어들면서 유엔 결의의 실효성이 매우 약화되었고 강대국의 재정분담금 미납으로 인한 재정적 곤란도 겪고 있는 실정이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취임 일성으로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와 함께 유엔의 개혁을 부르짖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유엔은 방만한 각 기관을 재조정, 통합하고 사무국을 개혁해야 하며 제 7대 아난총장 때 미국과 문제가 야기됐던 것과 같이 사무국과 회원국간의 불협화음도 해소시켜야 한다. 그리고 국가간 대립이 격화될 때 유엔이 속수무책이 될 수 밖에 없고 유엔에서 어떤 결의안을 의결해도 소용이 없는 현재의 위상을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또 지구 온난화, 에이즈와 같은 질병, 아프리카 등 후진지역의 가난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부진현상을 어떻게 타개하느냐는 것도 큰 문제로 남아있다. 말하자면 유엔은 국제평화와 안전, 인류의 복지향상이라는 목적을 수행하는 일과 함께 유엔이라는 조직을 존립시켜 나가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만 하는 것이다. 이 일을 맡아서 해야 하는 사무총장이라는 자리는 실로 막중한 자리이며 이 자리에 오른 반 총장은 영예와 함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반 총장은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반도 문제에 남다른 입장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지금 어느 회원국에도 편향되지 않는 공평한 자세를 견지해야 하지만 한국문제에 관해서는 다른 문제보다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 총장이 앞으로 10년간 사무총장직에 재직한다면 이 기간은 한반도의 장래에 아주 중요한 시기이다. 지금 북핵문제가 미결인 상태에서 한반도 정세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예측할 수 없으며 갑작스런 사태 변화로 남북통일이 이루어질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엔의 역할이 매우 크게 작용하게 될 것이리라는 점은 해방 이후 한국과 유엔과의 관계를 되돌아 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반 총장은 이런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셈이다.
반 총장이 유엔사무총장이 된 것은 그의 개인적인 영예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한국인의 자긍심을 높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실은 그의 영예와 한국의 위상, 한국인의 자긍심을 높이려면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남아있다. 그가 사무총장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영예와 자긍심이 우리의 것이지만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실패한다면 개인의 영예 뿐 아니라 한국과 한국인의 위상마저 추락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유엔사무총장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세계와 한반도의 평화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도록 한국과 한국민은 물론 해외 한인들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성원을 보내야 할 것이다.
<본보 주필> A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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