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혁(공인회계사)
지난 5월에 있은 샌프란시스코 대학교 졸업식 이야기를 읽고 역시 미국이 훌륭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11명의 졸업생들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장면이다. 나이가 모두 75세를 넘은 역전의 ‘용사’들인 이들은 감회에 젖어 어떤 이는 기도하고,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는 듯하고, 감회에 젖어 앞만 응시하는 이 등 정말 감격스러운 장면이다. 이들은 1951년 USF의 축구팀 “Dons”의 일원이었다. 당시에 모두 48명인데 작고한 사람도 있고 형편상 참석못한 이도 있고 하여 11명만 참석하게 됐다.
미 대학 축구경기 시합하는 여러가지 Bowl중에 1951년 미국 남부인 조지아에서 열렸다. 인종 차별이 워낙 심하던 때라 남부 여러 대학에 흑인 축구선수는커녕 흑인학생조차 없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대학팀에 흑인 선수가 두 명 있었는데 남부에 있는 시합에 참석하는 일로 고심할 때였다. 그렇지 않아도 흑인 선수가 당할 상상할 수도 모욕을 어떻게 뿌리칠까 할 때 주최측에서 흑인은 백인과 같이 경기할 수 없다고 하며 만약 경기에 참여하려면 백인만 오라고 했다.
축구팀에게 이 사실을 알렸을 때 전팀 멤버들은 두번 생각도 않고 우리 흑인 동료가 참석못하면 우리 모두 참석하지 하지 않겠노라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이런 Bowl경기에 참여하면서 얻는 학교나 선수 개인의 득은 엄청날 수도 있고 프로선수가 되는 관문이기도 하다. 학교 당국도 경기에서 얻어지는 수입이 클 수도 있고 이런 게임을 통하여 전국에서 우수한 학생을 뽑을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더구나 규모가 크지 않은 사립 카톨릭 대학으로서는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중재하려던 학교 당국도 학생들의 결연한 뜻에 따르기로 하고 최종 시합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엄청난 결정이었고 희생이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많은 경제적인 손실을 입은 학교는 축구 팀을 해산하기에 이른다.
54년이 지난 이날 스티븐 프라이븟 총장은 졸업식에서 이 선수들은 지성과 인격을 타협하지 않고 인간의 높은 뜻을 위하여 용감히 싸웠다고 치하할 때 졸업식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로부터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엄청난 재정적인 손실도 마다하고 선수들의 뜻을 따랐던 학교당국도 칭찬받아야 된다고 어떤 참석자는 이야기했다. 어떤 참석자는 이들 선수들이 경기에 참석은 못했어도 그들이 최후의 승리자라고 했다. 참 눈물겨운 장면이었다.
1964년의 인권 보호법은 어떤 날 몇몇 정치인이 만든 법이 아니고 이런 불의와 타협치 않고 인간의 기본권리를 위하여 희생한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한 나라가 한 조직이 이런 이들의 뜻을 기릴 때 희망이 있고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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