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희(옥희미용실 원장·사진)씨는 35년 이상 미용가위를 놓지 않고 손님들의 머리뿐 아니라 마음까지 만져주는 인생 상담 역할을 하고 있다.
이원장은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는 고달픈 직업인 미용일이 ‘천직’ 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고.1981년 뉴욕으로 이민 오기 전 이원장은 한국에서 VIP 고객들이 주로 다니는 호텔 미용실에서 오랫동안 경력을 쌓았다.
스무 살에 어릴적부터 관심 많았던 미용사 일을 시작, 주미대사 부인과 정계 고위인사 부인 등 VIP 고객들이 이용하는 서울 반도호텔 미용실과 도쿄호텔 미용실 등을 거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 같은 경력으로 영어구사에 어려움이 없는 터라 이민 오자마자 맨하탄 57가 소재 미국인 운영 유명 미용실에 취직할 수 있었다.친절함과 서비스로 손님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았던 이씨는 1987년 플러싱 유니온 상가에 옥희 미용실을 열었고 친화력을 바탕으로 한인 뿐 아니라 미국인 손님들을 단골로 확보할 수 있었다.이처럼 이민생활을 순탄하게 시작한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유니온 상가에 있던 미용실을 처분하고 인근 상가 건물에 미용실을 오픈하기 위해 계약까지 마쳤으나 건물완공이 늦어지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97년 IMF 사태까지 터져 3년간 미용실 문을 닫는 바람에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입었다.91년 베이사이드 벨 블러바드에 옥희 미용실을 연 그는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열심히 일했다.늘 즐거운 마음으로 손님들과 대화하며 고객 한명 한명을 늘려갔다.
과당경쟁과 렌트 인상, 불경기 등 한인 미용업계의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 미용사 세 명을 고용하며 미용실을 무리 없이 꾸려갈 수 있는 비결은 전체 손님의 80%가 미국인일정도로 타민족 공략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또 신세대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젊게 사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라 할 수 있다.이원장은 “칭찬과 고맙다는 인사를 아끼지 않는 손님들의 말 한마디에 피로를 잊는다“고 말했다.
한미미용인연합회 창립 멤버로 미용실을 운영하는 바쁜 와중에도 우드사이드 노인들에 무료로 머리를 잘라주는 무료 봉사활동도 펼쳤다.
의류업을 하는 남편 이청일씨와의 사이에 파슨스 스쿨을 졸업하고 현재 맨하탄 소호의 프라다 매장에서 세일즈직에 몸담고 있는 무남독녀 제니 이씨를 두었다.
<김진혜 기자> jh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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