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영근 만민공동회장, 민비 시해범 처단 후 행적 묘연
“항일운동에 몸 바친 조부의 유해를 찾고 싶습니다.”
루더빌에 거주하는 고대진씨(사진)는 구한말 명성황후 시해에 앞장섰던 우범선을 처단했던 조부 고영근(高永根)의 비운을 안타깝게 여겨 묘소 찾기에 나섰다.
고씨에 따르면 고영근은 무과에 급제한 후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에서 근무하던 중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발생하자 상경했다. 그는 만민공동회 회장으로 항일운동을 주도했다. 만민공동회는 서재필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독립협회가 행한 정치활동의 하나. 시민·단체회원·정부관료 등 모든 사람이 참여한 대중집회이다.
그는 만민공동회 무산 후 도일, 우범선 처단을 시도했다. 조선 훈련 2대대장이던 우범선은 궁녀복장으로 몸을 숨긴 민비를 일본 수비대에 확인시켜주고, 증거 인멸을 위해 화장하게 한 장본인이다. 우범선은 씨없는 수박으로 널리 알려진 우장춘(1898-1959) 박사의 부친이기도 하다. 우범선은 신변이 위험해지자 일본으로 망명, 일본 여성과 결혼해 우장춘을 낳았다. 우장춘의 생애는 육종학 연구와 아버지의 사죄로 일관했다.
고영근은 우범선을 칼로 척살한 후 일경에 자수, ‘국모보수’(國母報讐)라는 문구를 들고 민비 시해의 부당함을 만천하에 알렸다. 그는 6년의 옥살이 후 귀국했다.
사랑의 교회(김요한 목사) 원로장로인 고씨는 지난해 11월 한국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조부의 항일독립운동 규명에 대한 조사를 의뢰, 지난 3월 조사 개시 결정 통보를 받았다. 과거사위는 결정통보문에서 고영근의 독립협회 및 만민공동회 활동과 우범선 처단 기록이 여러 곳에서 나온 점을 결정이유로 밝혔다.
고영근은 일본에서 귀국한 후 일경의 체포를 피해 여주지역에서 상인으로 위장하고 ‘갓’장사를 했으나 포위망이 좁혀들자 지인이 살고 있던 충청도로 피신한 이후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고씨는 조부의 유해가 그 지인에 의해 어딘가에 안장되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고씨는“조부의 유해가 어디에 묻혀 있는 지 알기 위해 조부의 행적을 공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고영근의 파란 만장한 삶은 중견작가 김원우가 장편역사소설 ‘우국의 바다’(전 6권)에서 자세하게 그려냈다. 이 소설은 1990년대 초 대구 매일신문에 연재됐다. <박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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