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륙에 처음 등장한 흑인들은 1619년 버지니아 주 제임스타운 식민 개척지의 백인 주인들을 섬기러 온 종들이었다. 그 후 아프리카에서 실려 온 남녀 노예들은 인간이 아니라 상품이었다. 못된 백인들에 의해 겁탈을 당한 수많은 여자들이 있었음은 미국 흑인들의 얼굴색과 모양으로도 잘 알 수 있다. 심지어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라고 시작되는 미국 독립선언문(1776년)의 저자 토마스 제퍼슨마저 자기 딸 나이또래의 샐리 헤밍스를 데리고 살았을 뿐 아니라 100여 명 노예를 거느리고 농장 경영을 했다는 데야 인간의 이중성에 아연실색할 뿐이다. 헌법에서도 인구조사에서 흑인은 백인의 5분의 4로 계산해야 된다고 나왔지만 실상은 더욱 혹독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중노동에 조금만 쉬려고 해도 내리 쳐지는 채찍질로 고문당하는 삶은 죽음만이 해방이었던 인류 최악의 역사 중 하나로 꼽힐 만하다. 물론 백인 중에서도 노예제도가 반인류적 범죄라고 확신한 나머지 노예들의 탈출과 자유지역으로의 도망을 도운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남북전쟁의 와중에서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선언(1863년 1월1일 발효)으로 흑인들이 하루아침에 미국 시민들이 되기는 했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흑인 연방의원들마저 등장하기도 했지만 ‘남부 재건’ 중 공화당의 독주로 이를 갈던 남부 여러 주들에서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면서 흑인들의 참정권은 무참히도 짓밟히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조항’이 등장한다. 각종 선거에서 흑인들이 투표권을 행사하려면 투표권자 시험에 붙어야 된다는 법이 생긴 것이다. 그 시험이라는 게 하바드 대학을 나온 사람도 붙기 어렵기 때문에 흑인들이 절대다수가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백인들은 왜 그런 시험을 안 보아도 되었나? 할아버지가 투표권자였으면 일자무식쟁이 백인이라도 그런 시험에서 면제되었기에 ‘할아버지 조항’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참정권이 ‘법적으로’ 박탈된 마당에 다른 권리가 보장될 리 없었다. 흑인들은 모든 분야에서 철저히 차별당한 것이다. 백인들 지역에 집을 살 수도 없고 같은 호텔에 투숙할 수도 없었다. 아무리 배고파도 백인들의 식당에는 근접도 할 수 없었고 백인 어린아이들조차 아버지뻘 흑인 어른들에게 인종 비속어 ‘니거’아니면 ‘Boy’라 부르기가 일쑤였다. 교육에 있어서도 흑인들이 철저히 분리되어 열악한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고등교육의 기회도 제공되지 않았다.
필자가 미국에 온 1964년만 하더라도 흑인들이 마시는 물 수도가 따로 있었다. 존슨 대통령의 민권법안(1964)과 투표권법안(1965)이 연방법으로 채택된 후에야 흑인들이 시험을 보지 않고, 또 인두세를 내지 않고도 투표할 수 있게 되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는 꿈을 가지고 있다”라는 획기적 연설이 링컨 기념관에서 있은 게 1963년 8월이었다. 그로부터 꼭 45년인 금년 8월 같은 말에 버락 오바마가 민주당 대선후보 수락연설을 하게 된다. 흑인과 대통령이라는 두 단어를 같이 생각할 수 없었던 389년의 역사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 그만큼 달라졌다는 이야기다.
6월3일 오바마의 역사적 대통령 후보 결정이 확실해졌을 때 힐러리 클린턴은 지지자들 앞에서 한 연설에서 “내가 더 강력한 후보다”라는 궤변이 아니라 오바마 선출의 역사성을 시인하는 발언을 했었어야 한다. 만약 클린턴이 예선 결과에 흔쾌히 승복하면서 오바마의 승리 연설장에 나타나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면 누가 말려도 오바마는 힐러리를 부통령 후보로 반겼을 것이다. 어떤 흑인 칼럼니스트는 오바마가 대선에서 패하든지, 또는 당선 이후에 성공적인 대통령이 못 된다 하더라도 흑인 대통령 후보 등장이라는 역사성 때문에 그만큼 미국 사회가 변했다는 사실에 만족하다고 했다. 이참에 우리 교포들도 제발 ‘깜둥이’라는 말을 우리 언사에서 추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