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 천막의 부분을 올렸다. 초가을의 찬 공기가 폐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래도 환한 오후의 햇빛이 눈을 부시게 했다. 진은 눈을 감았다.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창백한 모습이지만 잔잔한 미소를 지으시며, 실로 엮은 돋보기에 의존해서 바늘귀를 끼시는 어머님. 그리고 군 입대 전에 하신 말씀이 머리를 스쳐갔다. “진아, 용서해라. 너를 군에 못 가도록 말렸어야 했는데 말이다. 고맙다, 너 덕분에 네 아버지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구나.”
밖에서는 차량이 멈추며 왁자지껄 동료들이 여단본부의 위문공연을 보고 돌아오나 보다. 천막을 걷어차며, 맥주깡통을 던지는 소리, 욕지거리와 함께 요란하다. 진은 천막을 내렸다. 그리고 침대에 얼굴을 파묻었다. 술, 화약, 개솔린 냄새가 섞여서 역겨웠다. 그렇지, 진은 측은한 감이 들었다. 이 젊은이들이 고향에 있었다면 차를 몰고 바와 카바레로 연인들과 쏘다녔을 터인데, 이제 12시간 후에는 ‘해골의 계곡’으로 투입되는 것이다. 누가 살고 누가 죽을지 아무도 모르는 생의 순간인 것이다.
옆 침대의 마크가 진을 흔들었다. “챈, 너 겁쟁이구나. 겁 많은 녀석은 결코 죽지 않아. 나 같이 전쟁이 그리워서 온 놈만이 죽을 권리가 있지.” 마크가 술에 취해 혀가 꼬부라져 말했다. 마크는 뉴욕의 내로라하는 부잣집 외아들에다 명문대 중퇴다. 그는 진의 어려운 가정 형편을 눈치 채고 그를 감싸고 속으로 동정했다. 진은 그가 한없이 부러웠다. 인생경험을 위해서, 또 정치적 야망 때문에 전쟁터의 경력이 필요하다는 그를 보면서, 그의 넉넉한 생각에 조금은 부끄럽기까지 했다.
진은 아버지가 가여웠다. 자기를 공부시키기 위해 미국에 이민 오셔서, 하는 사업마다 실패하고 빚더미의 세탁소를 인계받아 겨우 살만해졌는데,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덜렁 쫓겨나면서 충격으로 심장병에 누우시고, 어머님은 남의 세탁소에서 바느질을 하시며 근근이 지내신다. 진은 집안에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고교에 찾아온 징병관이 미리 응모하면 보너스를 준다고 해서 입대를 예약했던 것이다.
진의 중대는 09시에 카불서 동북부 파키스탄 국경지대인 작전지역으로 헬리콥터로 공수되었다. 가을 하늘은 검은 산 위에 질리게 파랬다. 산 그림자가 드리운 들판은 이름 모를 꽃들로 물결을 쳤다 총소리가 없는 들판을 달려가는 헬리콥터 안의 전우들은 검은 위장 페인트 때문에 눈동자만이 빤짝였다.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만이 긴 침묵을 깨고 있었다. 마크가 진의 다리를 치며 긴장을 풀라고 신호했다. 진은 고맙다고 머리를 끄떡였다. 진의 머리 속에는 따뜻한 어머니의 얼굴과 무어라 말씀하시는 듯싶은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 했다. “조심할게요. 만에 하나 집에 돌아 갈 수 없다 해도 슬퍼하지 마세요. 그저 용서하세요”라고 진은 입속에서 말했다. 진은 아버님께도 위로를 드려야 한다고 속삭였다.
“아버님, 제가 군인이 되어서 당당하게 싸움터에 나갑니다. 아버님 수술 잘 받으시고 건강을 회복해주세요. 혹 제가…” 이때 큰 폭발음과 진동이 헬리콥터를 좌우로 흔들며 빠른 속도로 하향했다. 그리고 천장이 열리고 파편이 쏟아져 내렸다. 진이 눈을 떴을 때는 새파란 하늘이 위로 보였다. 마크가 큰 소리로 살았구나 외쳤다.
조종사외 18명이 모두 생존해있었다. 마크가 포복을 해서 진에게로 왔다. 그는 진이 무사한 것을 보고 함께 부상자를 안전한 곳에 대피시켰다. 해가 길게 산 그림자를 그리며 기울어갔다. 계속 구조 응급 신호탄을 쐈다. 적이 이 신호탄을 보고 접근해 왔다.
필사적으로 기관총, 무반동총 사격을 가해 접근을 막으려 했지만 수류탄 두 개가 환자들의 보호지역으로 날아왔다. 진은 달려갔다. 하나는 재빨리 집어 던졌다. 다른 하나는 계속 환자 쪽으로 굴렀다. 진은 몸을 날렸다. 그리고 몸으로 수류탄을 덮쳤다. 마크가 진이 산화된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머리 위로 제트 폭음이 끝없이 진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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