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작은 아이가 엄마가 해준 저녁이 마음에 들었는지 대뜸 “My mom is the best cook in the world. My name is Joan, and I approve this message.” 라고 해서 식구들이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다. TV만 켜면 나오는 대선 광고에서 자신의 정치 소신이나 상대방을 비난하는 내용을 전하고는 꼭 끝에 이런 문구를 사용한다. 왠지 어린 아이들의 말투에까지도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정치적인 사회 분위기가 슬프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반장 선거철에 일어난 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어느 날 하교길에 교문 앞에서 병아리를 한 상자 담아든 아저씨가 병아리를 50원에 팔고 있었다. ‘삐약삐약’ 거리는 사랑스런 노란 병아리는 어린 학생들의 눈을 끌기에 충분했다. 마침 내게 150원이 있었다. 서슴없이 제일 예쁜 병아리로 골라서 봉지에 담자 옆에 서있던 내 짝이 자기도 하나 사달라고 조른다. 내 짝을 사주었더니, 그 옆에서 부럽게 지켜보던 여자 아이가 자기도 사달라고 울먹이는 거였다. 그래서 남은 돈을 다 털어서 그 아이도 사주었다.
아무 생각 없이 선행을 베푼 것이 며칠 뒤 반장 선거에 영향을 줄지는 전혀 생각 못했다. 반장 후보들이 나와서 하나 둘 씩 연설을 하는데, 그 중 한명은 자신이 반장에 당선되면 “교문 앞에 육교를 세우겠다”고 호언장담을 한다. 나는 “우리 반이 서로 싸우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당연히 내가 실리적이며 바른 말을 하였다고 생각했다. 그 때 어떤 아이가 일어서서 “민수는 반장 되려고 애들한테 병아리 사주었데요”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반장 선거에서 떨어지고 부반장이 되었다.
나중에 ‘육교 약속’을 했던 아이가 국회의원 자녀라는 것을 알았다. 자기 돈도 아니고 국민 세금 걷어서 좋은 일 한다고 칭찬받고 존경받고, 그 자녀들 또한 부모의 후광 속에서 빛나 보인다. 당선 후보들을 포함한 그 주변 사람들이 정경유착이란 관행 속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을 동안, 소신 하나로 버티는 사람들에게는 추운 날 선거 유세장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국밥 한 그릇 대접했다고 ‘선거법’을 운운하며 비난 공세를 퍼붓는 것이 세상 이치이다.
오바마 후보와 매케인 후보의 TV토론을 지켜보면서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의 삶을 포함해서 미국 사회에 진정 도움이 될 후보가 누구인가를 생각해보았다. 정말 그가 나의 삶에 직접, 간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가 흑인이든 백인이든, 나이가 젊든 들었든, 혹 경험이 있든 없든, 여자든 남자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소신과 사회 현상을 바르게 바라보는 지혜이다. 일단 매케인은 예상대로 ‘My Way’ 스타일이다. 그가 믿고 있는 국가관과 세계관을 펼치기 위해 지혜를 동원할 것이다. 반면 오바마는 일단 사회의 돌아가는 현상을 관찰하고 그에 대응하는 개인의 의견을 피력했다.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하늘에 뜬 구름 잡는 식의 맹약보다는 훨씬 신뢰가 갔다. 또한 오바마의 국민의 95%를 차지하는 25만불 미만 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집중 공략 정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설득력으로 다가갔다.
한편 아쉬운 점은 매케인이 지적한 바 오바마가 ‘말 따로 행동 따로’식의 투표 성향을 보였다는 점이다. 매케인 자신은 자신의 정당 안에서 조차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신대로 행동했으나 오바마는 뚜렷한 소신 없이 정당의 다수가 하는 대로 따라했다고 지적했다. ‘그간 보여온 기록이 진면목을 보인다’며 매케인이 계속 강조할 동안 오바마는 그 점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앞으로이다. 과거의 실수를 들먹이기보다 과거의 실수를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가 중요하다. 그리고 경험도 중요하지 않다. 정치적인 경험이 짧으면 짧을수록 정경유착의 비밀스러운 맛의 경험도 짧을 것이다. 지금 후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이고, ‘지금의 난국을 싸워나갈 투지가 충분히 깃들었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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