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란 꼭 현실적일 필요는 없다. 예술이란 사람의 창조성과 경험과 지식과 현실을 반영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한국의 문화가 만약 지금과 같이 대중들에게 현실 도피성 도구로만 사용된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요즘은 한국의 대중문화가 국민 정서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느낌을 종종 갖고는 한다. 대부분의 TV 미니 시리즈물이 갖는 문제들은 사회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신데렐라 스토리, 성공 신화, 상투적인 권선징악 등등 모든 내용들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실정이다. 사람들은 현실이 힘들면 힘들수록 현실을 잊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대중 작가들은 ‘가난은 더 이상 계속되지 않는다’, ‘내 삶에서 누군가 극적으로 나타나 구해줄 것이다’, ‘삶은 행복해질 것이다’라는 막연한 희망사항을 주제로 거짓 희망을 줄 때, 인기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작품들이 진정한 문학 작품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진정한 삶을 반영하지 못하고 환타지로만 끝난다는 한계 때문이다. 사실 ‘줌마렐라 문화’를 만들어낸 ‘내 인생 마지막 스캔들’의 내용을 살펴보면(최근 시청한 미니 시리즈였을 뿐 이 작품만 그렇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불행하고 억척스런 삶을 살던 중년 여성이 스타가 된 옛날 첫사랑을 만나 행복한 삶을 시작한다는 주제로 각가지 에피소드가 전개된다. 밤을 꼬박 새워 볼 만큼 흥미 있고 재미있게 보았다. 그런데 다 보고 생각해보니 무언가 강탈당한 느낌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주제와 에피소드와 과장되고 곡해된 내용들 때문에 배운 것 마저 잊어버린 멍한 느낌이 든다. 한국의 대중 미니 시리즈를 접할 때마다 똑같은 느낌을 갖는 것이 이상하다.
사실 대중문화가 꼭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강제성은 없지만, 요즘과 같이 경제가 침체돼 있는 경우는 심각한 사회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한 예로 ‘결혼만 잘하면 만사 해결 된다’라는 식의 사고방식은 미혼 남녀들의 도덕성을 망각케 하고 물질 만능주의 사고방식을 부추길 수 있다.
예를 들면 ‘내 인생 마지막 스캔들’에 나온 주인공이 예전 남편과 시집 식구들로 부터는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다가 만나는 사람들이 바뀌자 공주로 변신한다는 내용은 다분히 비현실적이다. 평범한 남편과 15년간 살면서도 영향을 주기는커녕 구박만 받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솟구치는 자신감을 가지고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스타와 동등하게 티격태격 한다는 것이 일단 말이 안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자아상이 있다. 그리고 그 자아상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 자아상은 하루아침에 쌓인 것이 아니고, 그동안 살아오면서 자신의 능력과 참모습을 평가해온 누적된 산물이다. 가문과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도 사람이란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사실 ‘운명’이라든지 ‘자아상’이란 말들은 서로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주변 환경이 아무리 비슷해도 다른 인물이 나오는 이유나, 그 사람의 주변 환경이 갑자기 달라져도 결국 본인이 원하던 뜻을 이뤄내는 것, 모두가 결국 내부에서 나오는 힘으로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내가 남편 잘못 만나 이 모양 이 꼴로 산다”며 신세한탄 하는데 제 삼자가 보기에는 참 비슷하게 만났다고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가뜩이나 환경 탓하고 남 탓하는 한국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생뚱맞은 ‘줌마렐라’ 스토리에 푹 빠져서 엉뚱한 꿈을 꾸는 사람은 없을지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