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원 목사(샘-의료복지재단 시애틀지부장)
요즘 자신의 고난을 감당하기 힘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소식들이 많이 들려온다. 그렇게 한들 해결될 일이 아닌데…이 고난의 해결은 도대체 없는 것일까?
오래 전 병원에서 일할 때 담당병동이 바뀐 적이 있다. 좀 망설였던 중환자실이었다. 방문 첫날 먼저 환자명단을 점검했다. 맨 밑줄 여자환자 이름 옆의 입원일수에 너무나 놀랐다. 3680일이었다. 10년 하고도 한 달여의 세월이 아닌가! 수간호사에게 그 사유를 물었더니 10년 전 첫 아이를 분만하다 중추신경이 끊어져 지금까지 전신마비로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멍해졌다. 입원 후 2년 여 동안은 많은 사람이 찾아왔지만 지금은 어느 목사(후에 알고 보니 남편 친구의 동서) 한 분만 6년 전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찾아오고 있다고 했다. 그 후 환자는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병동 맨 안쪽 칸막이로 된 그녀의 병실엔 알 수 없는 의료장비가 꽉 들어차 있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마를 수 있을까?’ 그녀의 큼직한 눈은 천정을 응시하고 있었다. 머리맡에는 매일 성경 달력이 있었고 오른 쪽 선반 위엔 대 여섯 살 남자애의 얼굴이 액자 속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10여분간 서서 기도를 한 후 저, 00씨 지금도 하나님께서 마음에 계심을 믿어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나를 향해 눈동자만 돌리며 에~에 라고 말했다(인공호흡기를 하고 있기에 그녀는 마치 혀가 없는 사람이 말하는 것만큼이나 힘들어 했다).
그녀의 그 한 마디는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자기가 낳은 아들 얼마나 보고 싶을까! 자식에게 젖을 물려보는 것이 여인의 큰 기쁨이며 행복일 터인데. 한번이라도 가슴에 안고 눈이라도 맞춰 봤을까? 보고 싶은 얼굴과 아름다운 경치 대신 천장에 달린 의료기구와 형광등만 보았으니. 그리고 평생을 그대로 누워 있어야만 한다니…
그 후 약 4년간 그녀를 찾아가 말동무를 하며 세 가지 기도제목을 만들었다. 첫째 병원 예배실에 가서 회중예배 한번 드리는 것(여러 의료기구 부착으로 거의 불가능), 둘째는 사랑하는 아들이 엄마하며 찾아와 주는 것, 마지막으로 비록 자신의 곁을 떠났지만 그녀에게 목사를 보내준 남편을 죽기 전에 한번 보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내가 외국에 나가게 됐다. 인사하러 찾아간 나에게 그녀는 병상 옆의 서랍장 위칸을 열어 보라 했다. 하얀 카드봉투가 있었다. 그 안에는 제법 자란 12살 소년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며칠 전 남편이 보내왔다고 했다. 남편의 아스라한 마음과 그리운 아들의 모습을 통해 2가지 기도제목이 이루어져 가고 있음에 나는 눈물 나게 감사했다.
계속해서 기도하겠다고 약속하고 작별을 고하자 그녀도 천천히 말을 건네 왔다. 모 옥사아님 나아는 이 세에 사앙에 끄으치 이써 해앵 보옥 캐에요.
그녀는 분명히 행복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물질과 인간관계가 다 끊어진 고난 속에서도 행복하다니! 얼마나 밤마다 몸부림치며 울부짖었을까! 내 인생 이게 무엇입니까! 이렇게 누워 숨만 쉬는 목숨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차라리 결혼하지 않았더라면…차라리 그때 죽었더라면 남편도, 가족도 마음에 큰 상처와 부담이 안 될 텐데… 하나님 당신은 누구이신가요? 도대체 내가 뭘 잘 못 했길래?’수도 없이 울며 불며 하나님에게 외쳤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행복하다고 했다. 세월이 무수히 흘렀기 때문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우리들이 하나님께 던진 그 어떤 고난의 질문도 그가 우리와 만나주기만 하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고, 이 세상의 논리로 갇혀있던 것을 뚫고 원래의 본연(인간창조의 본 뜻)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던졌던 질문 자체가 아예 소멸되고 더 이상 문제로 있을 수 없게 된다. 세상의 질문에는 답이 있기는 하나, 질문도 여전히 보이고, 또 다른 질문이 생겨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어떤 고난의 질문도 존재할 수 없는 무(해소)가 되어 버리고 만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을 보고 만나는 것이어야 하고, 교회는 현재 고난을 받는 이웃들에게 참 행복을 만나게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곧 추운 겨울, 북녘에서 고난 받고 있을 동족들과 무고한 어린 생명들에게도 고난의 끝이 있어 행복해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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