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 what?
선거열기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 주말 한인들의 뒤통수를 치는 사건이 터졌다. 마치 TV에서 말장난 코미디를 보다가 화면이 갑자기 긴급뉴스로 바뀐 느낌이었다. 워싱턴대학(UW) 청소원이었던 한인 천인수씨가 백주에 캠퍼스에서 분신자살 한 것이다.
UW 한복판의 ‘붉은 광장’에서 한주 전 분신사건이 발생하자 학교당국은 당사자의 신원을 짐짓 밝히지 않았다. 필자는 꺼림직했다. 분신이 한국 등 아시아권의 ‘자살문화’이기 때문이다. 담당기자가 UW에 달려가 취재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한인인 천씨였다.
천씨(61세)는 30대 초반부터 미국에서 살아왔다. 사고방식이 미국화 됐겠지만 그는 이민 오기 7년 전인 1970년 서울에서 발생한 한 살 아래 전태일(22)씨의 분신자살에 크게 영향 받았던 것 같다. 평화시장 재단사였던 전씨는 시장 앞 대로에서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분신자살을 감행, 한국 민주노동운동의 효시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씨 후에도 지난 2004년엔 울산의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근로자였던 박일수(50)씨가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외치며 분신자살 했다. 1960년대 월남에선 당시 군사독재에 항거하며 거리에서 분신자살하는 승려들이 속출했고, 2001년엔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광장에서 억압받는 ‘법륜공’ 수련자 7명이 집단 분신자살을 기도해 그 중 2명이 숨졌다.
한국에선 지난해 하루 평균 37명이 자살했다. 교통사고 사망자(30~32명)를 훨씬 웃돈다. 최근에도 남녀 인기연예인이 잇달아 자살해 미주 한인사회에까지 충격을 안겨줬다. 한국인의 사망원인 가운데 암, 뇌졸중, 심장마비에 이어 자살이 4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전씨와 박씨의 분신자살은 일반 자살과 구별된다. 자살자들이 대개 남몰래 목을 매거나 음독하거나 투신하지만 전씨와 박씨는 대중 환시리에 휘발유를 몸에 끼얹고 의연하게 불을 붙였다. 자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공개하고, 자신을 자살로 몰고 간 그 사회상황의 개선을 당당하게 요구한다. 그래서 분신자살은 살신성인과 일맥상통한다.
천씨의 자살 이유도 전씨와 박씨처럼 근로조건과 관계가 있었다. 학교당국은 “동료 청소원들과 불화를 낸 천씨의 일자리를 옮겨주기 위해 캠퍼스 내 다른 두 건물을 제의했으나 천씨가 거절했다”고 말했다. 천씨는 그 후 수 주간 휴가를 신청해 다녀온 뒤 직장에 복귀하지 않았고 학교 측의 잇따른 연락에도 불응해 해고조치를 당한 것으로 돼있다.
일각에서는 천씨의 분신자살이 한인사회에 부정적 이미지를 안겨줘 앞으로 한인들이 청소일도 얻기 힘들게 됐다며 투덜댄다. UW 당국자는 천씨가 ‘괴로움을 많이 겪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노스 시애틀 커뮤니티 칼리지, 우와지마야 마켓, 킹 카운티 법원 등 자신이 일했던 직장을 상대로 고용문제를 들어 제소했다가 패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영어를 잘하고 줄 소송을 낼 정도로 미국문화에 익숙한 천씨가 왜 분신을 택했을까? 미국인들은 분신을 엄두도 못 낸다. 십중팔구 권총 한방으로 간단히 끝낸다. 행인의 왕래가 빈번한 학교 광장에서 대낮에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인 천씨도 전씨와 박씨처럼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천씨가 살아있다면 최초의 흑인 대통령 당선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So what?이라고 반문할는지 모른다.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기 때문이다. 한인사회엔 천씨처럼 절망과 좌절을 안고 사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선거 쇼는 끝났다. 감사의 계절, 불우이웃 돕기의 계절을 맞아 눈길을 안으로 돌려 어려운 처지의 동포를 성원하는 일에 관심을 갖자.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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