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은 불경기 한파까지 겹쳐 몹시도 춥고 길었었는데 하늘까지도 겨우내 푸근하게 눈 한번 안 내려줘 우리의 여린 가슴을 더욱 얼어붙게 했었다. 이제 곧 봄은 찾아올 텐데, 가뭄과 겹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와도 봄이 온 것 같지 않은 봄-이 될까봐 걱정이다. 그래도 우리 스시바는 늘 희망을 가지고 새 손님를 맞기 위해 단장을 새로이 하고 따스한 봄날을 기다릴 것이다. 보라, 겨울바다는 늘 한결같은 얼굴을 보여주며 우리 스시바를 더욱 기름지고 풍요롭게 해주지 않는가.
이철은 광어가 연중 그 살이 가장 단단하고 쫄깃해 속살이 훤히 내비치도록 엷게 저며 폰즈(초가 섞인 엷은 간장)에 찍어먹는 사시미가 스시맨의 칼솜씨와 더불어 스시 애호가들에게 칭찬과 사랑을 받을 때고, 참치의 기름진 뱃살, 삼치(Spanish Mackerel), 방어가 맛있고, 스캘럽, 피조개 등 조개류와 오징어, 단새우, 성게 등 많은 바다산물들이 단맛을 낼 때이다.
한국의 동해안은 지난해 높았던 수온 덕분에 이 겨울 뜻밖에 복어가 많아 잡히는 바람에 겨울설악이나 오대산 등정을 끝낸 복 매니어들은 하산을 서둘러 가까운 포구에 들려 복 냄비 요리를 마음껏 포식을 하고 온단다. 이제 겨우내 북적댔던 강원도 화천의 산천어 얼음낚시도 해빙과 더불어 막을 내렸을 것이다. 찬 계곡물 속에 서식하는 연어과의 산천어도 이 겨울 훌륭한 산지 횟감인 것이다.
뉴욕 롱아일랜드 유태인이 많이 사는 동네에 오래전에 자리한 한 일식집은 식당이 제일 한가한 이맘때쯤에 주부를 상대로 ‘집에서 일식 만들어먹기’ 강습을 한다. 쌀과 생선의 인연으로 시작된 스시의 탄생을 몸소 손으로 빚게 해보고 주방음식 몇 가지를 가르쳐주고 생선 취급요령을 일러주고…. 웃음 반인 짧은 시간의 강습이지만 배움에 적극적이고 가족 중심의 ‘유태 어머니’는 이 시간을 위해 멀리 타 주에서 날아오기도 한다. 어떤 식품학자가 그랬다. 새로운 음식의 개발은 태양계에서 새 행성을 발견한 것보다 더 위대하다고. 새로 배운 요리로 가족의 만찬을 준비하는 주부의 마음은 그 못지않게 행복할 것이다.
우리도 집에서 스시를 만들어 먹어보자. 부처의 사리를 닮았다는 윤기 나는 초밥을 살포시 쥐어가며, 싱싱한 생선이 가진 자연의 색상이 얼마나 고운지도 느껴보고, 손끝에 탄력있게 잡히는 생선살의 살아있는 듯한 감촉을 즐기면서 스시를 빚어보자. 한국 마켓에 가면 생선부터 온갖 재료가 다 있다. 기회를 만들어 스시바에 앉아 세프들의 솜씨를 눈여겨보고 모르는 대목은 물어보면 다들 친절하게 가르쳐줄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생선초밥을 좋아하는데도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데 많은 세월이 걸렸다. 서울만 해도 옛날 일인들이 남긴 북창동의 남강이니, 미조리, 구미니 하는 일식집들은 서민과는 거리가 멀었었고 호텔이나 관광업소를 중심으로 드물게 있었다. 그 후 80년대에 들어 노량진 수산시장을 통한 활어 유통이 원활해지면서 신도시 틈새를 비비며 스시집들이 빠르게 생기기 시작했었다. 근자에 들어 젊은이들의 외식풍토가 늘고 또 일본 여행이 잦아지면서 비로소 스시가 젊은층 사이에 폭넓게 인식되어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대형 회전초밥집들도 젊은이들이 붐비는 곳이면 어디나 유행처럼 생겨나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며 성시를 이루고 있는데 이는 명동에 처음으로 회전초밥집이 생겼다가 얼마 안가 문을 닫은 지 30년도 지난 일인 것이다. 몇 해 전 이곳 알링턴의 B쇼핑 몰 안에 회전초밥집이 생겼었는데 오래 못 버티고는 작년 말에 기계를 뜯어내고 새로 스시바를 꾸미고 말았다. 스시를 찾는 미국인들은 방금 칼질해 촉촉하게 윤기 흐르는 생선과 만든 이의 따듯한 마음이 아직도 배어있는 스시를 셰프와 눈길을 마주하고 먹는 걸 좋아한다. 기계가 날라다준 스시보다는 단정한 차림의 동양 여인이 곱게 받쳐 들고 온 ‘작품’을 먼저 눈으로도 먹고 싶은 거다.
겨울의 막바지가 언제고 제일 어려운 때지만 우리처럼 스시손님들도 새봄을 기다리고 있음을 명심하고 이 봄엔 봄향기 그윽한 새 메뉴로 손님을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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