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송금-투자 자유화
84년 LA올림픽 맞물려
양적·질적으로 급성장
한국일보 30년사는 80년대를 ‘멈춤없는 성장의 시대’로 규정했다. 그 만큼 모든 분양에서 양적, 질적 향상을 이뤘다는 의미이다. 1984년 LA올림픽과 노태우 정부의 해외송금 및 투자 자유화 조치가 적지 않은 힘이 됐다. 이로 인해 70년대 올림픽 가를 점령한 한인사회는 할리웃까지 진출했고, 오렌지카운티 한인사회가 뿌리를 깊이 내리게 됐다.
1981년은 1월28일 전두환 대통령 LA방문으로 연초부터 한인사회는 찬반그룹으로 나뉘어 갈등을 겪었다. 이어 민주평통 첫 위원들이 이 해 봄 탄생했다.
한미수교 100주년이 되는 1982년에는 위장결혼과 결혼사기가 극성을 부렸다. 한국에 비해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정된 한인 미혼남녀가 한국의 ‘1등 배우자’로 손꼽히면서 나타난 부작용이었다.
1983년의 가장 큰 뉴스는 뉴욕을 출발해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 007기가 소련상공에서 소련기가 발사한 미사일을 맞고 폭파돼 승객과 승무원 269명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었다. 분노한 한인사회는 연일 시위를 벌이며 소련의 무책임한 행동을 규탄했다.
이 해 3월28일 KYCC의 전신인 한인청소년 회관이 개관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쫒다 보니 자녀관리가 허술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을 조금이나마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다. 그리고 8월에는 사형수 이철수씨가 누명을 벗고, 10년만에 자유를 찾아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1984년은 올림픽으로 한인사회가 하나가 됐다.
7월29일 LA콜로시엄에서 열린 23회 하계올림픽을 위해 한인사회는 후원회를 만들어 한 마음으로 선수들을 지원하고 뜨거운 동포애로 응원을 보냈다. 이에 한국은 종합 10위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보답했다.
1985년은 10대들의 강력사건이 빈발했다. 7월27일 오랫동안 부모와 갈등을 빗던 한인 청소년 피터 허군이 부모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하는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고, 10월3일에는 코리아타운 일식집 ‘동경암’에 20대 한인 3명이 난입, 샷건과 권총을 난사해 1명이 사망했다. 경찰조사 결과 갱관련 세력다툼이 원인으로 나타나 한인사회의 갱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줬다.
1986년 2월19일 롱비치 항을 통해 현대 엑셀이 첫 상륙했다. 자동차의 왕국 미국에 한국산 자동차가 달리기 시작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1989년 10월17일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7.2도의 강진이 발생, 67명이 사망하고, 50억 달러의 재산피해가 발생하면서 한인들은 ‘빅 원’에 대한 공포를 다시한번 느끼게 됐다.
■ 1980년대 주요 일지
1980. 4. 11 LA한국문화원 개원식
5. 21 남가주 총대학생회 광주사태 관련, 바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문 채택
1981. 1. 28 전두환 대통령 LA방문. 항의시위 잇따라
8. 5 첫 한인판사 탄생. 장병조 판사 밴나이스 지법 근무
8. 22 올림픽-버몬트 교차로에 ‘코리아타운’표지판 제막
10. 28 8가 파출소 오픈
1982. 1. 16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 ‘우정의 종’ 헌당식
8. 30 LA평통 창립식
9. 3 이철수씨 차이나타운 살인사건 무죄 판결
3. 24 한미연합회(KAC)발족. 초대회장 정동수씨
6. 24 한국 외무부 재미한인 68만7,124명 집계
1983. 3. 17 재미한인의사회 주소록 기준 한인의사 4,300여명
3. 24 한미연합회(KAC)발족. 초대회장 정동수씨
1984. 6. 14 ‘한국기독선교 100주년 남가주 대회’ 가든그로브 수
정교회서 개막
1985. 2. 5 한인이 세운 첫 학교 ‘LA한국 아카데미’ 개교
3. 13 타운 아파트서 김성호(32)씨 총격 피살.
8. 4 한인타운서 시아버지 전종일씨가 며느리 전미숙
(28)씨 총격 살해
8. 24 코리안 킬러 갱단원, 한인 청소년 11명 납치, 폭행
1987. 5. 20 라스베가스서 한인노인 태운 관광 밴 전복, 8명 사망
7. 22 본보 한국 태풍피해 돕기 모금캠페인. 두 달만에 30
만달러 이상 모금
9. 16 교황요한 바오르 2세 코리아타운 방문
1988. 3. 8 세리토스 이홍표(21)씨 경찰 정지명령 무시 추격전
세리프 집중사격 사망
4. 7 김수환 추기경 남가주 가톨릭 사목 20주년 기념 경
축미사 위해 LA방문
5. 22 우울증 앓던 그라나다힐스 정하명(32)씨, 임신 아내
와 6세 아들 살해 후 자살
10. 17 노태우 대통령 LA방문
11. 15 남북분단 후 첫 여행사 주선 북한단체관광 LA출발
1989. 1. 24 세리토스 탐 전(19) 부모 리커서 강도에 피살
2. 6 윌튼플레이스 초등학교 그레이스 윤 교장 발령. 첫
한인1세 교장
5. 10 정신병 경력 로저 박(43)씨 미션힐스 맥도널드서 백
인노인 권총 살해
12. 24 그랜드캐년 관광길 밴 전복, 한인 일가족 3명 사망
# 숫자로 본 80년대 한인사회
▲ 1980년 센서스 - 한인인구 전국 35만4,529명, 캘리포니아 10만3,891명
▲ 1981년 전화요금 - 첫 3분 4달러95센트, 이후 분당 1달러65센트
▲ 1982년 한인 식품점 및 주류업 비율 - 식품점 4,663개의 15%, 주류판매상 3,343개의 10%차지(남가주 전체기준)
▲ 1984년 한국유학생수 - 1만1,360명(국제교류연구소 82-83보고서)
▲ 1984년 한인인구 - 가주 27만84명, 남가주 20만3,327명(한인인구 외무부 재외국민통계 6월30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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