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주본사가 올해로 창간 40주년을 맞았다. 1969년 6월9일 스튜디오시티에서 한장짜리 신문이 세상에 첫선을 보였으니 오늘로 정확히 40년이다. 공자는 나이 마흔을 유혹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불혹’이라 했고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마흔이 되면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했다. 본보가 창간되던 해 세상에 태어난 커플 두 쌍을 만나 이들의 인생과 한국일보와의 인연에 대해 들어봤다.
# 아르헨티나 출신 데미안 김·리즈 김씨
“남미서도 읽으며 한글 공부 앞으로 10년 큰 도약 기대”
신문 꼼꼼히 읽던 어린시절 습관 덕 한국어 잊지 않았죠
“남미에서도 어린 시절부터 한글 신문은 빠지지 않고 읽었지요.”
데미안 김·리즈 김씨 부부는 1969년생 동갑내기이자 남미를 거쳐 미국에 정착한 2번 이민을 온 부부다.
각각 3세, 15세 때 부모를 따라 한국을 떠나서 아르헨티나에 정착했던 이들 부부는 19세 되던 해와 24세 되던 해 미국을 향해 2번째 이민가방을 쌌다.
현재 데미안씨는 LA 다운타운에서 의류관련 일을 하고 있고 리즈 김씨는 집에서 두 아이들을 돌보는 전업 주부다. 데미안씨의 한국말이 서툰데 비해 한국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을 보낸 아내 리즈씨의 한국말은 완벽하다.
이들 부부는 비록 남미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한국일보와의 인연이 남다르다. 데미안씨의 친척 가운데 한 명이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한글신문 제작관련 일을 했고 리즈씨는 이민 초기 한국어로 된 책과 글이 그리워 현지 한글신문을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샅샅이 읽어나갔다.
“그게 한국일보였는지는 정확히 기억 나지는 않지만 집으로 배달되는 한국어 신문을 정말 열심히 읽었습니다. 제가 한국어를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그때 습관 덕분인 것 같아요.”
한국일보가 1969년에 창간됐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지만 왠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이런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 보이는 이들 부부는 현재 10학년생 딸과 7학년인 아들을 두고 있다. 다른 동갑내기들에 비해 결혼을 일찍 한 편이라 출산도 빠른 편이었다.
외국생활을 오래 한 한인 부부가 동갑내기 1세 부부와 있을 때 느끼는 차이점도 있을까. “그럴 때가 많죠. 가령 집에 손님이 왔을 때 아내가 술상을 차린다든가, 남편이 아내를 윽박지를 때가 그래요. 우리 부부는 반대로 남편이 저한테 뭐 필요한 것이 없느냐고 물어보니까요.”
마흔이 되자 처음으로 지나간 인생을 뒤돌아보게 되고 향후 10년 안에 뭔가 하나를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는 이들 부부.
올해로 창간 40주년을 맞은 미주 한국일보가 지나간 40년을 뒤돌아보면서 앞으로 10년 안에 더욱 많은 일을 이루기를 당부했다.
# 웨스트토랜스 거주 이정호·손경미씨
“유용한 정보 이민생활 도움 2세들 이끄는 구심점 돼야”
삶의 질 향상 위해 6년전 미국으로 이민신문이 길잡이 돼야
“이제 서서히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시기가 된 것 같아요. 마흔살이 된 한국일보도 2세를 위해 길을 열어주는 신문이 되었으면 해요.”
사우스LA와 토랜스에서 각각 오토샵 대표와 헤어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이정호·손경미씨 부부는 둘 다 1969년도에 태어난, 한국일보와 동갑내기 부부다.
일반적으로 동양에서는 마흔을 ‘불혹’이라 해서 주변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로 규정하지만 자신들이 보기에 마흔은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하고 희생하기 시작한다는 것.
조금 있으면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자녀들을 위해 주거지며 생활환경 등을 자연스럽게 맞추게 된다는 것이다. “원래 집이 가디나였어요. 그런데 아이가 중학교 갈 때가 되니까 학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무리해서 웨스트 토랜스로 보금자리를 옮겼습니다.”
1969년생은 부모 세대와 달리 미국 이민 동기가 확연히 다르다. 부모 세대가 경제적인 풍요함이나 정치적인 해방을 위해 미국 이민을 선택했고 이보다 어린 70~80년대 생들이 부모를 따라 비자발적으로 미국행을 선택했다면 이들은 보다 나은 사회경제적 환경을 위해 미국행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그런대로 남부럽지 않게 살았어요. 가난이란 것을 모르고 살았죠. 그런데 유학이다 뭐다 해서 미국을 몇 번 여행하면서 더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설득했고 아내와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죠.”
이씨는 친구들 가운데 미국 이민을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이유는 대부분 자식 교육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씨는 자식을 위한 이민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자식 때문에 미국행을 선택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곳에서의 내 삶이 행복해져야 자식들도 행복해지니까요.”
이씨 부부는 마지막으로 마흔이 된 한국일보도 이제 다음 세대를 위해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털어놓기도 했다. “저희가 이민 온 지 6년째인데 한국일보를 통해 미국 생활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었습니다. 한국일보가 이제는 자식 세대를 위한 길잡이 역할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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