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역사 해박...일본 비판도 북한 어린이 돕던 박애주의자
오늘 알링턴 국립묘지 안장되는 VA 출신 칼 겝하드 전 해군중령
;모터사이클과 비행기 조종에 열광하고 낚시와 햄 라디오를 즐겼던 열정의 청년. 헤밍웨이와 아인슈타인, 마크 트웨인을 열애했던 지성인. 무엇보다 한국을 사랑해 한인 부인을 얻고 한국 역사책을 탐독하며 북한의 어린이들에는 따뜻한 사랑을 베풀었던 사람. 예비역 해군 중령이었던 고(故) 칼 겝하드 씨(Karl Ten Eyck Gebhard.사진). 버지니아 어퍼빌에서 살아온 그의 만년(晩年)은 한국과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의 시간이었다.
<진주만 공격으로 입대>
1919년 뉴욕의 마운트 버논에서 태어난 겝하드 씨는 예일대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젊은 엘리트였다. 콜롬비아 의대에 진학한 그는 2차 대전이란 격동기의 역사 속에서 명예와 국가를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군복으로 갈아입는다. 1941년 12월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자 이듬해 해군에 입대한 그는 26년간 복무하며 수많은 훈장과 대통령 감사장을 받았다.
1968년 커맨더(해군 중령)로 예편한 그는 해군 예비역협회에 근무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아폴로 12호 사진가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60세에는 해군 연구팀과 남극을 탐험하는 용기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일본은 기회주의의 나라”
그와 한국과의 본격적인 인연은 1995년 이복신 씨(미국명 Joy Lee)와 재혼하면서 시작된다. 이 노년의 부부가 신혼여행지로 택한 곳이 한국이었다. 겝하드 씨 부부는 창덕궁을 비롯한 조선의 궁궐과 박물관, 남대문 시장을 섭렵하며 한국에 대한 사랑을 키웠다.
“남편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젊어서부터 각별했나 봐요. 단군부터 조선 500년사까지 꿰뚫고 있어 놀랐어요. 삼국사기는 물론이고 다양한 역사책들을 읽었답니다. 특히 일본과 직접 전쟁을 겪었기에 일본의 잔학한 제국주의 식민정책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2차 대전의 장본인이나 독일처럼 제대로 처벌을 안 받았으며 자기반성도 부족한 기회주의의 나라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예편 후 수많은 나라를 여행하면서도 일본만은 가기 싫다고 거절하더군요.”
<힐링재단 설립, 北 지원>
부인 이 씨를 더 놀라게 한 건 한반도 분단을 바라보는 남편의 냉철하면서도 애정 어린 시각이었다.
“분단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북한 주민과 어린이들이 굶주리고 병들어 죽어가는 걸 보면서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에게는 남한도 북한도 하나의 코리아일 뿐이었습니다.”
겝하드 씨는 96년 비영리기관인 힐링재단을 설립했다. 그리고 그의 나이 78세인 1997년에 이어 98년 두 차례 북한을 방문했으며 약과 비타민 등 약 25만 달러어치에 상당하는 물품들을 전달하며 따뜻한 사랑을 베풀었다. 그의 방북 결심에는 부인 이씨가 그동안 대북 구호사업을 벌여온 걸 옆에서 지켜본 게 큰 영향을 미쳤다. 평남 덕천 생인 이복신씨(73)는 56년 유학차 도미했으며 북한 주민들의 참상을 전해 듣고 자선활동을 해왔었다.
“북한에 미국은 제1의 적 아닙니까. 남편이 해군 장교 출신이라 걱정이 돼 처음엔 제가 가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남편은 거기도 사람이 사는 곳인데, 아이들이 굶어 죽어 가는데 어찌 외면하겠느냐며 방북을 결행했습니다. 감옥 가는 것도 겁나지 않다면서요.”
겝하드 씨는 97년과 98년에는 ‘프로젝트 호프’와 함께 북한 대표단을 미국에 초청하기도 했다.
<투병하다 2월 타계>
그는 천상 박애주의자였다. 독립전쟁 당시 의사 겸 목사로 전쟁 미망인과 고아들을 돌봐준 5대조 할아버지의 피가 그의 몸에 흐르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약자를 돕고 사람을 존중하는 휴머니즘의 철학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노년에 한반도에 쏟아온 각별한 헌신과 사랑은 병고(病苦)로 인해 지속되지 못했다. 99년 심장 관련 대수술을 받은 이후 몸이 쇠약해지면서 모든 대외 활동을 중단했다. 그리고 2009년 2월25일, 만 90세 생일을 3주 앞두고 영면했다. 한국과 한국인들을 사랑했던 그의 시신은 오늘(24일) 낮 알링턴 국립묘지로 안장된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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