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의 황제’ 홀연히 스러지다. 25일 심장질환 증세로 돌연 사망한 마이클 잭슨은 화려한 음악 인생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진정한 ‘팝의 스타’였다. 50·60년대에 엘비스 프레슬리가 있었다면 마이클 잭슨은 70·80년대 미국 팝 문화의 진정한 ‘아이콘’으로 세계를 뒤흔든 스타 중의 스타였다. 그러나 화려하기만 했던 음악 인생의 이면에는 그늘도 짙었던 굴곡 많은 인생이었다. 마이클 잭슨의 생애를 조명해본다.
70·80년대 팝문화의 진정한 ‘아이콘’
잭슨 파이브로 시작 수많은 히트곡
순탄치 않은 결혼·성추행 혐의 타격
인디애나주 게리에서 1958년 8월29일 태어난 마이클 잭슨의 본명은 마이클 조셉 잭슨이다.
마이클 잭슨은 5세 때 형제들로 구성된 5인조 그룹 ‘잭슨 파이브’에서 리드싱어를 맡으며 가수활동을 시작, 1969년부터는 직접 안무한 춤을 뽐내며 잭슨 파이브를 인기 그룹의 반열에 올려놨다. 1976년 ‘잭슨스’(the Jacksons)로 이름을 바꾼 이 그룹에서 1984년까지 활동했다.
1971년 자신의 이름으로 ‘갓 투 비 데어’라는 음반을 발표하며 홀로서기를 시작했고, 뮤지컬 영화 ‘더 위즈’(1978)에 출연했다. 1979년에 제작된 그의 앨범 ‘오프 더 월’은 전 세계에 걸쳐 1,780만장이나 팔렸으며, ‘스릴러’(1982) 앨범은 무려 5,890만장이나 팔려나가고 9곡의 싱글 중 7곡이 탑10에 드는 신기록을 세우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 중 ‘빌리 진’과 ‘빗 잇’의 비디오가 MTV 케이블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돼 문웍크 춤은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대유행이 됐다.
이같은 대인기를 바탕으로 1996년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뮤직비디오상을 수상해 명실상부한 팝의 황제로 자리매김했고, 2001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공연자’ 부문에 오르는 등 팝의 황제로 군림하며 음악으로는 세계를 석권했다.
그러나 화려하기만 했던 음악 인생의 이면에는 그늘도 짙었다. 각종 스캔들에 휘말리며 이미지를 구겼고, 끊임없이 구설수에 시달리는 등 개인적으로는 굴곡 많은 인생이었다.
그의 인생의 내리막은 90년대부터 시작됐다. 점점 하얗게 변해가는 피부와 계속된 성형으로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온갖 소문을 무성케 했다.
가정생활 역시 평탄치 못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인 리사 마리와 1994년 깜짝 결혼식을 올렸지만 2년을 못 채운 19개월 만에 이혼했다. 1996년 간호사인 데비 로우와 두 번째 결혼식을 올리고 첫째 아들 프린스 마이클 주니어와 딸 패리스 마이클 캐더린를 낳았지만 두 아이 모두 정자은행에서 제공받은 정자를 통해 태어난 아이임을 밝혀져 충격을 줬다.
무엇보다 가장 큰 몰락의 원인은 아동 성추행 혐의였다. 1993년 13살 소년 조단 챈들러를 성희롱했다는 이유로 피소 당하며 이미지가 추락했다. 2,000만 달러에 합의했지만 이후 병원비가 없어 고통 받던 게빈이라는 아이를 도와주다가 2003년 또 다시 그의 부모로부터 성추행범으로 몰려 체포되기까지 했다. 이후 재판에서는 승소했지만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잭슨은 사망 직전 몇 개월간 월세 10만 달러짜리 임대주택에서 세 자녀와 함께 거주해 왔다. 잭슨의 꿈의 왕국이었던 샌타바바라의 2,500만달러짜리 대저택 ‘네버랜드’는 성추문 소송 등으로 막대한 빚을 져 경매 위기에 처했다가 시카모어 밸리라는 부동산 개발업체에 인수됐다.
잭슨은 막대한 빚을 갚기 위해 라스베가스에 카지노도 열 계획이었다. 잭슨은 또 내년 3년간의 월드투어 등 부채를 갚기 위한 여타 사업진행 계획도 세우던 중이었다. 잭슨은 현재 약 2억달러의 빚을 진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에는 코 성형수술의 후유증으로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속에 내달 런던 콘서트를 통해 재기를 노렸으나 갑자기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지난 1996년 10월 ‘평화와 환경을 위한 공연’차 한국을 방문한 마이클 잭슨이 한복을 차려입은 어린이 합창단과 함께 그의 히트곡 ‘힐더 월드(Heal the world)’를 부르던 모습. <연합>
마이클 잭슨이 1999년 6월23일 한국 방문시 혈액암 환자였던 임재헌군을 만나 위로하고 있는 모습. <연합>
# 마이클 잭슨 연보
▲1958년 8월29일: 인디애나주 게리 출생
▲1963년: 그룹 잭슨 파이브 메인 보컬
▲1971년: 1집 앨범 갓 투비 데어로 데뷔
▲1978년: 뮤지컬 영화 ‘더 위즈’ 출연
▲1979년: 오프 더 월 앨범 출시, 1,780만장 판매
▲1980년: 빌보드 어워드 최우수 흑인 아티스트, 최우수 흑인 앨범상
▲1982년: 스릴러 출시, 문웍 댄스
▲1993년: 소년 성추행 혐의
▲1994년: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
▲1996년: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이혼, 간호사 데비 로우와 재혼
▲2000년: 월드뮤직 어워드 최우수 앨범판매 밀레니엄 아티스트상
▲2001년: 명예의 전당 로큰롤 공연자부문 헌액
▲2002년: 명예의 전당 작가부문 헌액
▲2002년: 아메리칸뮤직 어워드 세기의 아티스트상
▲2009년 6월25일: 사망 향년 50세
<김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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