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점을 보지 않는다. 전에는 인터넷 토정비결 같은 것을 재미삼아 보기도 했었는데 지난 몇 년 간은 한 번도 점 같은 것을 보지 않았다.
살다보니 고통이나 실패, 혹은 불행으로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의 경우 미래를 위한 준비와 성장의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은 덕이다.
미국의 대학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한 첫 학기에 나는 겁도 없이 전공인 저널리즘 과목을 세 강의나 신청했고 덕분에 매주 써내야 하는 페이퍼의 양이 대략 스무 장정도 되었다. 한글로도 스무 장을 써본 적이 없던 나는 글씨체를 키웠다 자간을 늘렸다 하면서 스무 장을 채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다 끝내 포기하고 잠을 줄이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성적에 신경이 쓰여 마감보다 하루 일찍 조교한테 교정을 받고 제출하다 보니 그야말로 밤을 새는 날들이 많아졌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나는 7~8시간은 자야 다음날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잘 자야 이틀에 5시간 정도였다. 수업을 마치면 곧장 도서관으로 가서 두꺼운 사전을 옆에 놓고 잘 써지지도 않는 글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며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할까 유학 온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렇게 지옥 같은 한 학기가 지나갔고 나는 감사하게도 평균점으로 패스를 했다. 그 당시 내가 다니던 저널리즘 대학은 성적이 어느 이상 되지 않으면 가차 없이 낙제시키는 걸로 악명 높았고 실제로 공부를 같이 시작했던 친구들 중에도 몇 학기 지나 전공을 바꿔야 했던 사례가 빈번했다.
그런데도 영어가 모국어도 아닌 나는 한 과목도 낙제하지 않고 졸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첫 학기에 글 쓰는 연습을 혹독하게 받은 덕분이었다.
‘강한 여자는 수채화처럼 산다’의 저자인 서양화가 이정순씨는 남편을 폐암으로 떠나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본인이 자궁을 들어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몸이 회복될 즈음 느닷없이 집을 빼앗길 위기에 빠지고, 그 와중에 그는 딸을 시집보냈고 남편의 분신 같은 손자를 얻었다.
그 지독한 시간을 거치고 쓴 책 ‘그래도 다시 희망을 이야기하자’에서 그녀는 그 시간동안 당혹스러움, 처절함, 분함 등이 뒤섞여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약해졌지만 결국 그것들이 삶을 바라보는 여유와 관조로 승화됐다고 이야기했다.
의도적으로 나쁜 짓을 하지 않은 이상 인생에서 맞닥뜨려지는 고통이나 실패에는 뜻이 있는 것 같다. 그 뜻을 되새기며 어떤 불행이든지 감당하겠다는 생각으로 살면 그 불행이 행복의 씨앗을 뿌려 언젠가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도 같다.
그렇다면 더더욱 불행을 피하기 위해 점을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지니 조 / 마케팅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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