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모(웨체스터 한인회 수석 부회장)
눈이 온다.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펑펑 쏟아진다.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눈이 싫어졌다. 눈은 나를 힘들게 하는 나쁜 놈일 뿐이다.
20여년, 우리부부가 맨하탄을 오가며 열심히 돈을 모아 조그마한 사업장을 장만해서 운영 할 때, 내가 미국에 와서 처음 만나는 폭설이 왔다. 우리 부부는 자동차를 포기하고 가게까지 걸어서 출근을 했다. 하지만 눈 때문에 가게 문을 열 수가 없었다. 다행히 빌딩 수퍼의 도움으로 가계 문을 열고, 하루종일 몇 명의 손님을 받고 나서야, “여보!괜히 열었다. 다음에는 열지 말자.” 서로를 위로 하며 집으로 돌
아 오는 길에 우리 부부에게 새로운 소망이 생겼다.”여보 우리도 짚차 한 대 사자.”
다행하게도 그해 겨울이 오기 전에 Ford에서 새로 나온 Expoler를 구입하게 되었다. 얼마나 좋았는지. 가지 않아도 될 곳도 차를 몰고 다니며 즐기던 중에 있었던 웃지못할 일이 생각난다. 뉴저지에 있는 Point Pleasant Beach로 놀러 갔을 때, SUV 차량들이 백사장을 질주하고 있는 영화처럼 멋있는 장면을 봤다. 나는 주저 없이 백사장으로 달려들었다. 한 2,3분이나 달렸을까! 우리 차는
백사장 중간에서 멈춰 버렸다. 차에서 내려보니 네 바퀴가 모두 모래 속에 반 이상이 묻혀 있었다. 내가 어쩔 줄을 모르고 서있을 때,한 백인 아저씨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고, 또 차 두 대가 다가왔다.차에서 내리는 사람마다 야전삽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바퀴 주위를 팠고, 또 타이어의 바람을 빼기 시작했다.내가 다시 운전석에 앉자 ‘easy easy’ 하며 우리를 도와준 사람들 덕분에 가까스레 백사장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눈 이야기를 하다가 뉴저지 비치까지 다녀왔지만, 다시 눈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지난 12월 말 폭설 때 뒷마당에 있는 차고에서부터 나갈 길만 트는 데도 2시간 이상이 걸렸다. 땀을 흘리며 집에 들어와서 그때까지도 자고 있는 식구들에게 일어나라고 소리 쳤다.그러자 와이프는 짜증스럽게 “이렇게 눈이 많이 왔는데 누가 나오겠어요? 그냥 쉽시다”하는 것이다. 순간 20년 전이 생각 났다. 눈 속을 한 시간 이상 걸어
가게를 열었던 열정 말이다.결국 스키복을 입고 나오는 와이프가 우습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길에는 20년 전에 비해 다양해진 SUV 차량들 몇 대가 눈에 띌 뿐이었다.한참을 걸려 가게에 도착하니 파킹 장 입구에 한자는 될 만큼 눈이 쌓여 있었다.대충 가게 앞을 치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펼쳐진 설경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친구들과 같이 눈 덮인 설악산에 놀러 갔던 생각,눈싸움을 하던 생각…… 지금 나는 왜 저렇게 멋 있는 눈을 즐기지 못하고,싫어 하게 되었을까?나 뿐 아니라 많은 자영업자들이 눈으로 인해 피해를 보았을 것이다.눈과 아무런 이해 관계가 없는 사람들은 눈을 싫어할 이유가 없다.연인들은 작년 겨울에 했던 약속 때문에 첫눈을 기다릴 것이다.아이들은 눈이 오면 학교에 안가니까 눈을 좋아할 것이다.
그래. 앞으로는 내리는 눈 가지고 스트레스 받지 말자고.오는 눈을 즐기며 살아보자.다음에 눈이 오면 아예 가계 문을 닫고 곧 바로 스키장으로 달려가 봐야겠다.그러나 저러나 다음 주에 또 눈이 온다는데,벌써 부실한 허리가 걱정된다. 아들아 눈 좀 같이 치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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