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와 결혼할 때 아내는 나에게 생일이나 결혼기념일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날은 발렌타인 데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순진하게도 그런 날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결혼한 나는 2월 14일을 기억하려고 일찌감치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를 쳐놓고 있었다.
미국 아내와 결혼하는 바람에 한국과 미국에서 결혼식은 두 번했고 생일은 음력을 지키고 있던 나는 결혼기념일과 생일이 온통 뒤죽박죽이 되었다. 그래서 발렌타인 데이와 아내의 생일은 기억해 주려고 노력하였다.
아내 몰래 꽃집에다 장미꽃을 주문하고 아내가 즐거워 할 생각으로 마음이 뿌듯했다.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느낀 것은 한국 남자는 감정 표현이 약해서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기억하는 것을 쑥스러워 하기까지 하는 것 같다. 클라이언트가 결혼으로 영주권을 신청할 경우, 이민국에 인터뷰를 가기 전에 항상 예행 연습을 해 준다.
이민국 직원이 언제나 묻는 질문이 있다.
나는 마치 이민국 직원인양 여자에게 먼저 묻는다.
“결혼기념일이 언제입니까?” “시 어머님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남편의 생일은 언제입니까?” 대부분의 여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정확하게 날자와 이름을 기억한다.
남자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 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남자는 그리 많지 않다.
그나마 젊은 사람들은 기억을 하고 있지만 나이가 들을수록 그런 기념일을 기억하는 것은 약한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난 언제나 옆에서 듣는 여자가 신경쓰였다. 보통의 여자들은 아주 섭섭해 하고 실망하는 모습인 것이다. 그런 분위기에 익숙한 나는 “오늘 저녁은 굶으셔야 겠네요?”라고 농담을 한다. “이 다음 늙어서 아내가 곰국을 많이 끓여 놓으면 아내가 집을 나가는 날이다”라고 이야기하면 여자들의 굳어졌던 얼굴이 다소 풀어지는 것을 느끼곤 한다. 미국에 사는 많은 한국인들이 한국에서 생일은 음력, 양력 때문에 헷갈리고 결혼기념일은 결혼식 날자와 혼인 신고 날자가 틀려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필자도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음력 생일을 지키다가 아이들이 크면서 아빠 생일을 기억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호적에 기재되고 운전 면허증에 있는 날짜로 생일을 하기로 했다. 사실 생일이라고 해서 파티를 한다거나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사랑하는 가족이 기억해 주고 축하해 주는 것은 참 좋은 일인 것 같다.
옛날 가부장적인 제도에서의 한국은 여자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기억하는 것이 좀스럽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필자도 어느덧 결혼한 지 25년이 되었고 가끔은 모든 날짜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모든 남자들이 다 기억해야 하는 발렌타인 데이는 꼭 기억하려고 아직도 빨간 동그라미를 열심히 그어대고 있다.
미국에서 사는 여자분들은 가사와 육아는 물론 직장까지도 다니면서 가족과 남편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남자분들이여! 점수를 따자
아내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꽃으로 아내를 기쁘게 해주자
일반 생활에서 아내에게 “사랑한다, 고맙다”라는 말을 자주 해주지 못하지만 아름다운 꽃으로 아내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고맙다는 말을 대신 할 수 있다면 아내에게 점수따기에 이보다 더 좋은 찬스는 없는 것 같다.
이곳 미국 생활이 힘들다 보니 우리의 마음이 메말라지고 감사가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색깔이 다른, 모양이 다른 온갖 꽃들이 서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꽃다발이 되는 것처럼, 부부사이에 다른 생각이나 의견들이 어우러져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하모니를 이루는 기쁨을 이번 기회에 맞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음 주 월요일이 발렌타인 데이다. 남자들이여! 잊지 말고 꽃송이를 들고 집으로 가자. 여자를 위해서 그리고 남자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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