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척추 통증에 시달리다 보니 신경이 알려주려는 내용이 무엇인가 자주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 사람의 몸에는 신경조직이 존재하며, 그 신경들이 각자 맡은 대로 신비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오장육부로부터 눈과 코, 심지어는 피부의 구석구석까지 신경들이 신비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왜 이 신경을 다른 말로 쓰지 않고 신경(神經)이라고 쓰면서 “신의 말을 써 놓은 책”이라고 했을까? 나는 희로애락을 느낄 때마다 이것이 그때그때 신이 나에게 침묵으로 말을 하는 것이로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기쁠 때의 그 기쁨, 힘들 때의 그 노고, 슬플 때의 그 비애, 즐거울 때의 그 출렁이는 흥겨움, 이것들이 신이 말해주는 침묵의 대화다. 봄철에 피는 꽃잎들의 각각 다른 색깔들, 들판을 걸어가는 바람의 한가로운 나들이, 호수 물위에 누워서 망중한을 즐기는 잔잔한 햇빛들, 말보다도 눈빛에 가득한 연인의 간절한 내용, 실상 소리로서 말하는 방법보다도 소리 없이 말하는 침묵의 대화가 더욱 은은하고 강렬할 때가 많다.
교회 첨탑에서 죄인을 내려다보는 십자가라든가, 산속 언덕에서 부드럽고 근엄한 모습으로 산 아래 중생을 바라보는 산사라든가, 마음속에서 왔다 갔다 하는 온갖 상념들, 잘못을 저지른 아들의 손을 잡고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의 침묵, 보고 또 보아도 항상 그리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이런 것들은 소리 없는 침묵의 말로서 그 힘을 더 발휘한다.
시인은 침묵의 대화로 자연과 사랑과 연민과 깊은 대화를 나눈다. 소리 있는 소란 속에는 시로서 표현해 낼 아름다운 내용이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만약에 소리를 내고 싶다면 그 소리는 선율이라든가 화음이라야 한다. 선율은 있으되 소란이 없는 화음, 소란스러우면 음악이 되지 않는 저 소리의 비밀, 돌담이나 담장은 말이 없어도 집을 지켜주고, 지붕위의 기와들은 말이 없어도 내리는 비를 막아준다.
소리란 무거운 것이다. 소리로서 무게를 늘리기보다는 침묵으로 가볍고 깊게 하라. 소리가 많으면 자연이라든가 영혼의 대화가 들리지 않는다. 소리를 죽이고 들판을 걷는 조용한 바람에 초목들은 빛깔을 낸다. 지구는 소리를 내지 않고 태양을 돌고, 달도 소리를 내지 않고 지구를 돈다.
소리는 아무리 즐거운 소리라도 결국은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가볍게 하라. 아무리 높은 곳으로부터 소리 없이 떨어져도 곤충들은 상하거나 죽지 않는다. 가볍기 때문이다.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기 전에 사는 동안 우선 침묵의 대화로서 감정이 깊어지고 침묵의 대화로서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사람들의 그 많은 소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묘지를 가 본다.
김윤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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