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부모를 따라 고국을 떠난 성 김이 주한 미국 대사가 되어 금의환향했다. 한국계 주한 미대사 탄생은 1882년 한미 수교 이후 129년 만에 처음 있는 일로 미주 한인 이민사에 큰 경사가 아닐 수 없다. 그의 대사 부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김 대사는 중학교 1학년 때인 1970년대 중반 주일공사를 역임한 아버지 김재권씨(일명 김기완)를 따라 미국에 이민을 왔는데 부친 김씨가 공사 시절 1973년 일본 도쿄에서 발생한 김대중 납치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밝혀지자 김 대사 부친의 전력을 놓고 한때 야권 일각에서 비판이 일기도 했지만 이는 김 대사와는 전혀 무관한 과거사일 뿐이다. 하여 김형욱 회고록 ‘혁명과 우상’ 제4권에 쓰여 있는 납치사건 관련 내용이나 순탄하지 못했던 김 대사의 가족사를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유난히 혈연을 따지는 국민정서 때문인지 본국에는 김 대사가 단지 한국계라는 사실에 반색하며 각별한 친근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듯한데 이는 가당치 않다. 그러면 사상 첫 한국계 주한 미대사를 맞는 우리 한국민의 바람직한 자세는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할까.
지난 8월 중국계 미국인 최초의 주중 미 대사로 베이징에 부임한 게리 로크 대사는 부임 직후 다음과 같은 간략한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개인적 측면에서는 중국인 이민자의 아들이지만 나는 내가 태어난 미국과 우리 가정이 귀중하게 생각하는 미국의 가치관을 대표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이에 중국 언론은 “로크 대사가 중국인과 같은 피를 가진 화교이지만 어디까지나 미국을 위해 근무하는 미국인일 뿐”이라고 지적하면서 홍콩의 한 교수가 과거 한 잡지에 “로크 대사는 바나나다. 겉은 (황인종이어서) 노랗지만 속은 (백인종처럼) 하얗다”고 비판한 것을 상기시켰다. 그가 중국계라는 사실에 너무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것이다. 로크 대사를 맞는 중국인들의 반응은 담백했다. 한국인들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김 대사도 로크 대사와 다르지 않다. 외모만 우리와 같을 뿐 그는 엄연한 미국인이다. 그는 한국에 부임해 미국의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견마지로를 다 할 한 사람의 직업 외교관일 뿐 우리에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그가 한국계이기 때문에 전임 미대사들 보다 한국에 더 우호적일 것이란 환상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한국어에 능통하면서도 6자회담 특사로 남북한을 오갈 때 북한측 대표는 물론 남한 기자들과도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만 대화를 했던 김 대사는 서울에 부임해서도 “말 실수를 피하기 위해” 업무 수행 때는 주로 영어만을 사용할 방침임을 밝혔을 만큼 자신의 정체성과 직업의식이 투철한 미국인일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의 국익이 첨예하게 상충할 때 그는 분명히 이익의 균형을 자국에 유리하도록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또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사로서 당연히 그래야 한다. 우리가 진정 한 핏줄로서 그를 아낀다면 그가 대사의 소임을 다하고 고국을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만에 하나 알량한 핏줄을 내세워 그를 불편하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김 대사가 재임 중 한미 양국 간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더욱 돈독히 함은 물론 우리 한국민과 한반도ㅢ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설계할 수 있는 좋은 파트너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김중산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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