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 동창들과 송년모임을 가졌다. 이제는 모두 70 전후의 노인 카테고리에 들어있는 할머니들이다. 돌이켜 보니 70이 넘도록 누구의 ‘엄마’나 누구의 ‘아내’로 불리며 살았을 뿐, 명성도 내놓을 것도 없는 존재, 한물간 아니 두물간 할머니들이구나 하는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가치는? 어떻게 살아야 후회 없는 생활일까?” 라는 독백에 한 친구가 대뜸 “돈과 명예지 뭐!” 라고 단언한다. 다른 친구는 “사랑이 첫째야” 라고 했다. 교수인 내 옆의 친구는 ‘학문과 사랑’이라고 말한다. 지식에 대한 끝없는 사랑! 그리고 사랑과 이해, 이것이 우리의 삶을 값지고 풍족하게 하고 삶의 의욕을 지탱해주는 원천이라는 생각이 든다.
광속으로 발전해 가는 인터넷을 따라가기도 힘든 요즈음 어느 날 본 만평은 나를 깨우며 생의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스티브 잡스의 사망을 다룬 밥 잉글하트 작의 시사만평이었다. 그림에는 ‘스티브 잡스 1955-2011’라 써 있고 잡스가 유령처럼 서서 그의 진 바지 포켓에 스마트 폰을 집어넣고 있다. 그 옆에 ‘세상을 우리 주머니에 넣어준 인물’ 이라고 써 있다.
자신을 철저하게 관리한 사람, 철저하게 자신에 충실한 사람, 철저하게 자신의 사상대로 인생을 살다간 사람, 그의 삶을 읽어보면 ‘철저하다’는 어휘가 바로 그의 영혼의 속삭임 같다.
이제 세상을 우리의 포켓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우주시대에 일차원적인 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한편 디지털 시대의 숨 가쁜 속도감과 과학문명의 편리함에 길들여져, 빠르고 쉬운 환경의 지배를 받는 우리에겐 ‘지금, 여기’라는 현실이 삶의 토양으로 정착되어서, 깊고 넓고 오랜 역사적 인류의 가치를 경시하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또한 시나브로 변질되어 가는 우리의 관심과 다양한 지식으로 빚어지는 복잡한 삶은 순수한 맑음에서 멀어지고 불안과 초조, 한곳에 올인 하지 못하는 가치관의 혼돈을 자초하게 되지않을까도 염려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라는 금맥은 어떤 것일까?
BC 400년 경의 서양철학의 비조인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으로 5가지를 들었다. 생활하기에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용모, 자신의 자만에 비해 부족한 명예, 중간정도의 체력, 연설을 듣고서 청중의 절반은 손뼉을 치지 않는 말솜씨라는 것이다.
그가 생각한 행복의 조건은 부족하고 채워지지 못한 겸허한 생을 말한다. 차고 넘치게 완벽한 상태에 있으면 바로 그것을 지키기 위해 근심과 불안과 긴장이 교차하는 생활을 하게 될 것이므로 적당히 모자란 가운데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나날의 삶 속에 행복이 있다고 플라톤은 생각했다. 무한한 욕망에 대한 자제의 필요성을 암시한 것이다.
유태인의 ‘탈무드’는 사람이 죽어서 가져갈 수 없는 것으로 첫째는 ‘돈’이며 또한 친구, 친척, 가족이라고 한다. 그러나 선행은 가지고 갈 수 있다고 한다. 부는 분뇨와 같아서 모아두면 냄새나고 고약하나, 흐를 때는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서 생활에 이롭다는 교훈을 주는 인생철학이 음미할 만하다.
김인자/ 시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