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 취재 - LA 플라워 디스트릭과 수산시장의 한인들
8가와 샌피드로 스트릿 코너에 위치한 글로리아 플라워에서 박희준(69)씨가 다른 업소보다 먼저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은호 기자>/날이 밝기 전 주문 물량을 소매업소들에 배달하기 위해 하버마린 프로덕트 김준도 대표가 직원들과 수산물을 나르고 있다. 이은호 기자
10번 프리웨이를 타고 가다 샌피드로 스트릿에 내려 LA 다운타운 북쪽으로 올라가면 자바시장이 나온다. 한인사회에 친숙한 자바시장을 뒤로 하고 샌피드로 거리를 타고 조금 더 올라가보자. 8가와 7가에 다다르면 매일 새벽 LA 다운타운을 깨우는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위해 남보다 먼저 아침을 맞이하는 플라워 디스트릭(Flower District)과 수산시장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꽃향기 그윽한 삶 속에 배인 땀
남가주 한인 경제의 젖줄인 자바시장이 불을 밝히기 전인 새벽 4시, 샌피드로 거리와 8가가 만나는 플라워 디스트릭은 적막한 도심을 조심스레 깨우듯 노란색 백열등과 하얀색 LED 전등이 불을 밝힌다. 꽃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 고운 빛깔의 백장미, 선분홍 튤립,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포인세티아 등 갖가지 꽃을 진열하고 그날 그날 가격을 적는다.
8가와 월(Wall) 스트릿 교차로 인근의 ‘LA 플라워 마켓’은 밀라노 컴퍼니 소유로 1921년 문을 열고 LA 꽃시장 역사를 시작했다. ‘원조 꽃집’(The Original LA Flower Market)이란 간판으로 지난 세월을 이야기한다. 새벽 5시, 플라워 마켓 한 가게 안에 은은한 백장미 약 30송이 한 다발 14달러, 안개꽃 한 다발 4달러, 크리스마스 블루파인 2.75달러 푯말이 꽂혔다.
샌디에고와 북가주에서 온 트럭 안에는 꽃 박스가 한 가득 실려 있다. 남가주 플라워 마켓(SC Flower Market) 경비로 취직한 지 3개월 된 리카르도 아레올라(21)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새벽 2시부터 문을 연다. 꽃가게 업주들이 주 고객”이라며 “주중엔 하루 평균 500명, 주말에는 수천명이 찾아 온다”고 말했다.
LA 플라워 마켓은 일반인이 입장료 2달러를 내면 오전 6시부터 정오까지 샤핑이 가능하다. 굳이 꽃을 사지 않더라도 바로 옆 남가주 플라워 마켓 상가까지 60여 꽃도매상 가게를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꽃은 웃음을 주는 ‘문화’
“꽃을 다루는 일은 지루하지가 않아요. 계절마다 나오는 꽃도 다르고 찾아오는 손님도 얼굴 찡그리는 일이 없거든요. 꽃집 경기가 안 좋다지만 그나마 꽃 도매업은 다른 비즈니스보다 낫네요”
수년째 ‘초이스 플라워’ 도매상을 운영한 이안 박(56) 사장은 월ㆍ수ㆍ목요일은 오전 1시, 화ㆍ목ㆍ토요일은 오전 5시30분이면 아내와 가게 문을 연다. 십수년째 같은 자리에서 소매상을 만나는 그는 “시들기 쉬운 꽃은 2주까지 상품가치를 유지할 수 있지만 대부분 1주일이 지나면 처분한다”며 그만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방지 품질경영’ 철학을 설명했다. 박 사장 가게는 손님 90%가 꽃집, 플로리스트, 연회업체 등 비한인 소매상으로 네덜란드, 싱가폴, 태국, 에콰도르 등에서 꽃이 비행기에 실려 온다.
10년째 ‘기무라 홀세일’을 운영 중인 샘 윤(50)사장은 어머니 음재영(78)씨, 사촌과 함께 선인장, 서클런 등 다육식물을 취급하고 있다. 아들을 따라 새벽 2시 길을 나서는 음 할머니는 커피를 끓이고 한올 한올 수를 놓듯 보랏빛 꽃잎 목걸이(네이)를 만든다. 음 할머니는 “사모아식 꽃목걸이는 졸업, 생일, 기념식 등 비한인에게 인기”라며 웃었다. 남편의 간호학교 졸업을 축하한다는 한 손님은 단돈 15달러에 수제 꽃목걸이를 손에 넣었다.
6시께 동이 트면 플라워 디스트릭은 더 바빠진다. 한인 도매상들은 그날 들어온 꽃을 진열하고 일반인들은 꽃 박물관을 찾아온 양 ‘작품’ 감상에 나선다. 한 달에 두 번 도매상을 찾는 정애순(61)씨는 “새벽에 아들과 나와 장미를 한 다발 사가면 집안 가득 향이 그윽하다”며 웃었다. 동양의 상징 ‘난’을 취급하는 캘리 옥(40대)씨는 “꽃은 문화”라며 “요즘은 비아시안들이 난 사랑에 빠져 개인이 한 번에 200~300개를 사갈 정도”라고 전했다.
■삶이 꿈틀대는 한인 수산시장
꽃내음을 물씬 머금은 후 7가를 타고 샌피드로 스트릿 동쪽으로 가로지르면 수산시장이 나온다. 한인 수산시장은 노량진 수산시장과 달리 단독건물에서 소매상 손님을 맞는다. 한국, 일본에서 갓 잡은 광어 등 싱싱한 활어와 멍게, 해삼 같은 해산물은 신선도를 최우선해 비행기로 직송한다.
현재 LA 다운타운 수산시장은 한인 업체가 일본 업체와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한인이 운영하는 퍼시픽 아메리카, 오션 프레시, 인터스테이트, 퍼시픽 프레시, 하버마린 프로덕트는 남가주 한인타운과 비한인 스시 전문식당을 주 고객으로 삼는다. 요즘은 한인 업체들이 경쟁자인 일본 업체를 능가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수산시장 진입 10년 만에 중견 업체로 성장한 하버마린 프로덕트(Harbor Marine Products, Inc) 김준도 대표는 “최근 여기저기서 한국산 수산물이란 말을 많이 하지만 손님들은 살 때 ‘모양새와 사이즈’를 잘 비교해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밴 10대로 새벽 ‘소매점 배달’에 나서는 하버마린 프로덕트는 참치만 하루 약 1,400파운드 이상 판매한다. 새벽 4시부터 직원들은 대형 수족관과 냉동고를 돌며 그날 들어온 주문 물량을 준비한다. LAX를 거쳐 도착한 활어 박스에는 한국, 스페인, 인도네시아, 필리핀, 중국 등 각국 우편소인이 찍혀 있다. 대형 참치 회를 뜨고, 얼음을 쏟아 붇고, 직접 찾아 온 스시집 사장님들께 인사하는 하버마린 프로덕트 직원 30명 모습은 어촌 해안가 부두를 떠오르게 한다. 대형 참치 여러 마리를 회 뜨는 장면은 수산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값진 기회. 이들의 분주한 움직임 덕에 한인들은 약 800개 식당서 하버마린 프로덕트 수산물을 즐긴다.
<김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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