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나 개인이나 잘못했으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도리다. 그런데 진정성 있는 사과는 용기 있는 자 만이 할 수 있다. 전후 독일은 유대인 학살 등 나치만행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했지만 일본은 동시대 자국이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행위에 대해 국왕이 고작 “통석의 념” 운운하며 마지못해 사과하는 시늉만 했을 뿐 뉘우치는 기색이 전혀 없다. 뉘우치기는커녕 잊을 만하면 망언을 일삼아 지난날의 아픈 상처를 덧나게 하는 아주 고약한 나라다.
혹독한 일제강점기 36년을 거치면서 국권 회복에 대한 꿈을 잃고 절망한 조선의 지식인들은 일제의 회유와 협박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변절해 친일의 길을 걷고 만다. 그 중에는 기미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육당 최남선과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던 고우 최린, 그리고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춘원 이광수 등이 있다. 민족대표 중에서 식량 배급을 거부하고 영양실조로 죽어도 끝까지 전향 안 한 사람은 만해 한용운이 유일하다.
아일랜드 국민은 17세기 중엽에 시작된 영국의 식민통치를 20세기에 벗어나면서도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고 유대인들은 2천년을 디아스포라로 떠돌면서도 독립에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한민족은 불과 36년의 피지배기간 동안에 숱한 수치스런 친일의 기록을 남겼으면서도 해방 이후 지금까지 일제 때 악명을 떨친 친일파 가운데 역사와 민족 앞에 무릎 꿇고 공개 사죄한 사
람은 거의 없다.
광복 후 반민특위 재판정에서 “광화문 네거리에서 나의 사지를 찢어 죽여라”며 눈물로 참회한 최린과, 50년이 지난 1991년 경남 하동에서 열린 초청강연에서 하동과 창녕군수일 때 “젊은 나이에 출세와 보신에 눈이 어두웠다”며 군민들에게 사죄한 전 홍익대 총장 이항녕 등이 있을 뿐이다. 최남선은 옥중에서 그나마 자열서라도 썼지만 창씨개명 등 황국 신민화에 앞장섰던 이광수는 반민특위에 끌려가서도 전혀 뉘우침이 없이 끝까지 변명으로 일관했다.
지난해 11월 22일 동요 ‘고향의 봄’을 쓴 아동문학가 이원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딸이 아버지의 친일행적에 대해 사죄했다. “친일인명사전에 아버지의 이름이 등재된 것을 보고서야 알았다”고 밝힌 그녀는 “아버지가 친일작품을 썼을 당시 자식들에게는 일본어를 못 쓰게 하고 한글을 가르치곤 했다는데 그런 글을 썼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눈물로 용서를 빌었다.
숨죽이고 살아야 마땅할 이완용, 송병준 등 대표적 친일파의 후손들이 그들의 조부가 일제로부터 매국의 대가로 받은 땅을 돌려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당당히 소송을 제기하는 기막힌 세상에, 친일행적이라야 달랑 5편의 친일시를 쓴 것이 전부인 아버지를 용서해 달라며 눈물을 쏟은 그녀는 이미 부끄러운 ‘친일파의 딸’이 아니다.
알다시피 박근혜 의원의 아버지는 독립군을 토벌한 일본군 장교 출신이다. 안중근이나 이봉창 같은 이들이 조국의 광복을 위해 기꺼이 한목숨을 바칠 때 그는 오직 일신의 영달을 위해 혈서까지 써가며 일제에 충성을 바친 용서받지 못할 사람이다. 이원수의 딸처럼 이제라도 아버지를 대신해 국민에게 깊이 사죄하고 용서를 비는 박 의원의 모습이 보고 싶다.
김중산/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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