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만 강산과는 달리 사람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좀처럼 쉽게 변하지 않는다. 더구나 악한 사람이 개과천선하고 거듭나기란 어쩌면 새로 태어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거나 본인의 의지 여하에 따라 일시 변할 수는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대체로 본색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물론 김익두처럼 예외적인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소설 속의 가공인물이지만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 미리엘 신부에 의해 새 사람이 됐듯 황해도 안악 출신 깡패 두목 김익두가 미국인 선교사 W. L. 스왈렌의 설교에 감화되어 전혀 딴 사람이 될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기독교인으로 거듭난 그는 후일 평양신학교를 거쳐 목사가 되었고 1950년 공산 치하에서 순교할 때까지 평생을 복음 선교에 바쳤다. 김 목사는 전국 150여 곳에 교회를 세웠고 2만8,000 번의 설교를 통해 28만여 명의 불신자를 신앙으로 인도하는 등 초기 한국교회사에 불멸의 발자취를 남기고 전설이 되었다.
1998년 15년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대도 조세형은 기독교에 귀의해 전국 교회를 돌며 신앙 간증을 하고 ‘늘빛 선교회’란 단체까지 만들어 선교 활동에 전념하는 등 한동안 갱생의 삶을 사는 듯 했지만 끝내 도벽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금 교도소를 들락거려 반신반의하면서도 그의 변신을 믿고 반겼던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고령(79)인 그는 지금도 복역 중이다.
1970~80년대 주먹계의 한 축을 이룬 조양은도 18년간 복역하고 나온 후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한동안 착실히 신앙생활에 힘쓰는 듯했던 그 역시 어둠의 세계와의 질긴 인연을 끊지 못해 아직도 공안당국의 관리 대상이 되고 있다. ‘세 살적 버릇 여든 간다’거나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속담이 시사하듯 제2의 천성으로 굳어버린 강고한 습성은 신앙의 힘으로도 극복하기가 쉽지 않음을 짐작케 한다. 어쨌거나 조세형과 조양은 모두 신분세탁을 위한 수단으로 일시 종교를 이용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구랍 30일 민주화운동의 대부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1985년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가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6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고문이 얼마나 혹심했던지 고문기술자를 돕던 사람조차 김근태가 홀로 남았을 때 “차마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다. 어떻게 해서든 여기를 떠나라”고 울먹일 정도였다고 후일 김근태는 법정에서 증언했다.
그때 그를 그토록 잔인하게 고문한 사람이 바로 얼마 전까지 사이비 목사 행세를 하고 다닌 ‘고문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이다. 김근태의 죽음을 계기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 이근안에게 철저한 검증도 없이 목사 안수를 준 교단에 대한 비난 여론이 고조되자 해당 교단은 결국 지난 14일 그의 목사직을 박탈했다.
이근안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에서 고문은 애국이었고 일종의 예술이었다”며 “당장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죽는 날까지 참회하고 용서를 빌어도 모자랄 인간에게 성직을 부여해 하나님을 욕되게 한 교단은 오늘날 기독교가 왜 ‘개독교’란 소릴 듣고, 많은 사람들이 왜 교회를 떠나거나 멀리 하는지 차제에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김중산/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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