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잔 김의 길 따라 배우는 스패니시 [43]
칼라파(Calafa) 여왕의 섬나라 캘리포니아(California)이야기를 듣고 북미대륙 탐험에 관심을 갖은 누뇨 벨트랑 데 구스만 당시의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과 에르낭 코르테스는 탐험대를 조직하여 대륙의 북서쪽 방면을 탐험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이들이 보낸 1차 탐험대는 1535년 5월3일 라파스 바이아(La Paz Bahia: ‘평화 만’이라는 뜻으로 지금의 바하 캘리포니아 최남단 도시)를 발견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1539년 7월 코르테스는 프란시스코 드 울로아(Francisco de Ulloa) 일행에게 작은 배 3척과 함께 캘리포니아 2차 탐험을 명령했다. 탐험선은 바하 캘리포니아의 동쪽 해안가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 지금의 콜로라도강(‘붉은색 강’이라는 스패니시)의 하구까지 탐험했으나 그들은 그 강을 바다로 착각하고는 본대로 귀환하였다.
탐험대의 보고를 받은 누뇨 부왕은 그곳이 캘리포니아 섬임을 확신하고 ‘캘리포니아’라고 이름을 지었고, 그 섬과 대륙 사이의 바다를 에르낭 코르테스의 이름을 따서 코르테스 바다라고 명명하였다.
재미있는 일은 코르테스 바다에는 파도의 물살이 거세고 소용돌이치는 좁은 해협이 있는데, 이 해협에 잘못 들어섰다가 침몰하는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 해협의 이름을 살시뿌에데 해협(Canal Salsipuedes)이라고 지었는데 뜻을 풀이 하자면 ‘헤어날 수 있다면 어디 헤어나 보렴!’(Sal! Si Puedes!)이라는 의미다.
그 후, 캘리포니아의 3차 탐험은 1542년 9월 후안 로드리게스 카브리요(Juan Rodriguez Cabrillo)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카브리요는 코르테스의 부하로 멕시코 원정에 참여했던 장교였다.
후에 그는 지금의 과테말라 지역에 근무하던 중 아메리카 대륙을 담당하던 부왕 안토니오 멘도사의 명으로 지금의 캘리포니아 해안을 최초로 탐험하게 되었다.
40대 초반의 카브리요는 새로 건조된 함선, 산살바도르(San Salvador: ‘구원자’라는 스패니시)와 빅토리아(La Victoria: ‘승리’라는 스패니시), 산미구엘(San Miguel: ‘성자 미구엘’이라는 스패니시)을 이끌고 멕시코 할리스코(Jalisco)주의 나비다드(Navidad: ‘크리스마스’라는 의미) 항구를 출발했다.
<다음 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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