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석’ 작품이네요. 이거 어디서 났어요?”
소망 갤러리 전시회를 앞두고 이것저것 분류를 도와주던 한 지인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소망 소사이어티는 지금 각 가정의 소장품들을 기증받아 전시 판매하는 소망 갤러리 행사 준비로 바쁘다. 갤러리에서 얻은 수익금은 전액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쓸 예정이다.
“이석이 누구예요?”
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알 턱이 없었다. ‘이석’을 어느 화가의 본명쯤으로 생각하며 되물었다.
‘이석’은 한국화의 대가 중 한 분인 임송희 선생의 호였다. 화가는 ‘이석’ 외에도 ‘심정’이란 호를 갖고 있다. 놀라서 인터넷을 뒤져 그의 작품 몇 점을 살펴봤다. 낙관을 대조해 본 결과 ‘이석’의 작품이 틀림없었다.
그 그림이 어떻게 우리 집 골방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한국 방문 중 선물로 받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남편이 구입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 귀한 작품이 그동안 썩혀있었다니 괜스레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오래 전 가까이 지냈던 분이 준 도자기도 가치가 상당할 것으로 짐작된다. 일본의 유명 도예작가가 빚은 것이라며 절대 남에게 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자기다. 자기를 내게 준 그 분은 이미 세상을 떠나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알 길이 없다.
450년 된 이조백자 등 소장품들을 내놓으려니 처음엔 아깝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내놓고 나니 그렇게 몸과 마음이 홀가분할 수가 없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는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비움의 미학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이 새로운 충만으로 다가온다. 가진 것들을 내려놓자 오히려 마음이 맑아지고 또 다른 삶의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을 느낀다. 몸은 피곤하지만 열정이 솟아나 지칠 줄도 모르고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문득 법정스님의 ‘무소유의 삶’이 떠오른다. 무소유란 궁색한 빈털터리가 되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가르침이다. 놓아버리는 연습을 미리 미리 익혀야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이 아닌가 싶다.
췌장암으로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시각장애인 강영우 박사가 지인들에게 보낸 이메일도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여서 감동으로 다가온다. “누구보다 축복받은 삶을 살아온 내가 주변을 정리하고 작별인사를 할 시간을 허락받아 감사하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강박사는 25만 달러나 되는 큰돈을 선뜻 사회에 기부했다. 품위 있는 마무리의 롤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
소망 갤러리는 LA에서는 한국문화원, 오렌지카운티에서는 UCI의 도움으로 열린다. 전시될 소장품 하나하나엔 기부자의 이웃사랑 정신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내가 소장했던 작품이 누군가에게 전해져 귀하게 여겨진다면, 그리고 그것이 씨앗이 돼 몇 사람의 생명을 살린다면 그보다 값진 마무리는 없을 것이다.
유분자/ 소망소사이어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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