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회에서 날치기 처리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문제가 올 4월 총선의 핵심 이슈가 될 전망이다. 민주통합당이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의회에 보냈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는 지난 8일 주한 미 대사관을 방문해 “이명박 정권이 추진한 한미 FTA는 국가 이익이 실종된 것이어서 이 상태로는 발효시킬 수 없다”면서 재협상을 요구했다.
한 대표는 이어 “이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정권교체를 통해 폐기를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거침없는 한 대표의 말투에서 마치 민주통합당이 이미 정권을 잡기라도 한 듯한 오만함이 느껴진다.
총리 때 한미 FTA 반대 시위를 금지시키고 FTA를 반대하는 시민단체에 대한 지원금을 끊도록 지시했으며 총리에서 물러난 후에도 버시바우 당시 주한 미 대사와 만나 FTA의 조속한 비준을 강력히 촉구했던 한 대표가 이제 와서 다시 미 대사관을 찾아가 안면몰수하고 딴소리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협정문의 점 하나도 고치지 않겠다고 큰소리치던 이명박 정부가 재협상을 통해 양보한 자동차 부문을 빼면 투자자-국가소송제(ISD) 등 민주통합당이 문제 삼고 있는 독소조항들은 이미 참여정부 때 합의된 내용과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 사실관계가 이러함에도 민주통합당이 폐기를 고집한다면 이는 필시 국익이 아닌 눈앞의 총선 승리를 위한 당리당략 때문일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미 FTA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라며 협정 체결의 당위성을 역설했고 당시 이 같은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협정 추진에 앞장섰던 한 대표는 폐기를 주장하기에 앞서 태도를 바꿔 한 입으로 두 말 하는데 대해 먼저 국민에게 사과부터 하고 나서 이해를 구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미국이 재협상 요구에 불응할 것이 뻔한데 설사 정권교체가 돼도 그렇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단 한 번도 전례가 없는 국가 간의 협정 폐기를 차기 한국 정부가, 그것도 강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일방적으로 선언할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하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민주통합당이 폐기 주장을 계속한다면 이는 총선을 앞두고 한미 FTA 반대세력의 표심을 다지기 위한 꼼수로 양두구육의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 간의 협정이 뒤집힌 데서야 나라의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무엇보다 자원빈국에 내수시장마저 작은 한국 같이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가 협정 폐기 후 최대 통상교역 국가인 미국과 척을 지고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지 민주통합당은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훼손을 걱정하는 목소리 또한 가볍게 흘려들어선 안 될 것이다.
국익 앞에 여와 야, 보수와 진보, 친미와 반미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미국은 두 차례의 재협상을 통해 알토란같은 국익을 챙겼다. 우리라고 재협상을 요구해선 안 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폐기만큼은 아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 듯 득보다 실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해서든 미국을 재협상 테이블에 다시 나오도록 외교적 노력을 다해야 한다.
미국도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때처럼 또다시 한국에서 반미감정이 고조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국익에 반하는 정략적인 한미 FTA 폐기 주장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
김중산/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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