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나는 그리운 사람에게 내용 하나 없이 서명 하나만 달랑 적힌 이메일을 보냈다. 날씨 좋은 날, 형광등으로 가득 찬 도서관에 앉아있자니, 어느 새 나는 꾸벅꾸벅 졸고 있다. 잠을 깨울 요량으로 피아노 곡 하나를 재생했는데 문득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는, 그러나 항상 내게 소중한 친구 한 명이 생각났다.
‘잘 지내니?’ 하며 소소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형체 없는 마음의 크기가 유형의 말을 앞서서인지, 나의 잔잔한 그리움은 연약한 언어의 한계에 부딪쳤다. 몇 분 고민하다 여백의 미를 빌어 빈 이메일을 발신해버렸다.
여백의 미. 나는 여백의 미를 좋아하고 그만큼 많이 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소통할 때, 나는 여백의 미를 빌어 수줍게 내 마음을 표현한다. 가장 깊은 사랑을 표현할 때 나는 오히려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여백의 미를 알게 된 건 스무 살 무렵이다. 삼청동에 있는 작은 공간 갤러리에 갔을 때였다. 작은 공간에 40호 캔버스가 하나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의아해하는 나에게 화가가 다가와 말했다. “비움으로 채운 그림입니다”
비어있다는 것은 그 비움으로 모든 것을 채운다는 것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리고 나는 방금 여백의 미를 빌어, 그리운 이에게 글자 한 자 없는 이메일에 밀도 높은 그리움을 가득 담아 보냈다.
채경열 /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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