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주 미션시대-샌디에고 가는 길 ①
▶ 잔 김의 길 따라 배우는 스패니시 [56]
1606년 캘리포니아 개척금지 조치에 따라 160여년 동안이나 잊힌 대륙이었던 캘리포니아는 그동안 ▲아카풀코 마닐라 무역상들의 알타 캘리포니아 항구개발 요구 ▲바다표범 사냥꾼 러시아 어선과 영국인들의 캘리포니아 출현 ▲캘리포니아 미션에 대한 교회의 압력 ▲알타 캘리포니아의 개발을 꿈꾸는 뉴스페인 부왕의 등장 등의 요소가 어우러지며 캘리포니아 미션사업은 일사천리로 추진되었다.
1765년, 스페인 국왕 스페인 국왕 찰스 3세는 뉴스페인 부왕 자리에 호세 데 갈베스(Jose de Galvez)를 임명했다. 그는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이며 노련한 정치가였는데 항상 활력이 넘쳤으며 모험을 즐기는 타입이었다. 그는 부왕 자리에 앉자마자 알타 캘리포니아의 이주계획에 박차를 가하며 적극성을 보였다. 가톨릭교회에서도 그의 알타 캘리포니아 이주정책을 대대적으로 지지하였음은 물론이었다.
캘리포니아의 탐험은 1542년 전설의 엘도라도(황금도시) 캘리포니아 섬 왕국의 확인을 목적으로 한 후안 카브리요(Juan Cabrillo)의 1차 탐험과, 1602년 마닐라 무역의 아메리카 대륙의 도착지 항만건설 조사를 목적으로 한 비스카이노(Vizca?no)의 2차 탐험이 전부였다.
그들의 기록을 토대로 계획된 캘리포니아 이주정책, 일명 엘카미노 레알(El Camino Real·왕의 길)의 시작 지점으로 바로 천연 항만인 샌디에고로 결정되었으며, 바하 캘리포니아의 집정관이었던 가스파르 데 포르톨라(Gaspar de portola)가 캘리포니아의 주지사 겸, 탐험대의 총지휘관으로 임명되었고, 동시에 미션활동으로는 주니페로 세라(Junipero Serra) 신부가 지휘봉을 잡았다.
알타 캘리포니아 미션기획은 치밀하게 준비되었다. 우선 30마일(48킬로미터)마다 미션을 만든다는 가정 하에 말을 타고 하루거리 지점, 혹은 걸어서 사흘거리의 지점을 미션지역으로 책정하였다. 이는 엘카미노 레알의 사이사이에 여행객들을 위한 숙박 및 부대시설이 갖추어진 장소, 즉 여행객은 물론 그들의 말과 노새도 함께 쉴 수 있는 안전하고 편안한 휴식공간이 필요하다는 라수엔(Lasuen) 신부의 주장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1769년 1월7일, 마침내 샌디에고를 향한 최초의 이주단을 실은 첫 번째 함대가 바하 캘리포니아의 라파즈(La paz·평화라는 뜻)만을 출항하였다. 비센테 빌라(Vicente Vila) 함대 사령관의 지휘 아래 3척의 해군 함대(San Carlos, San Antonio, San Jose) 중 첫 번째로 출항한 함정인 San Carlos함에는 62명의 이주민과 페드로 파헤스(Pedro Fages·나중에 제3대 알타 캘리포니아의 주지사가 됨) 대위가 이끄는 25명의 호위대원들이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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